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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만난 프랑스 영화인 [1] - 프랑수아 오종 감독

2005년 겨울 파리, 프랑스 영화인 3인과 만나다

2006년 초, 세편의 프랑스영화 <타임 투 리브> <레밍> <히든>이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 <씨네21>은 개봉에 앞서 이 영화들의 감독과 배우를 파리 현지에서 만날 수 있었다. <타임 투 리브>의 감독 프랑수아오종, <레밍>의 감독 도미니크 몰, <히든>의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그들이다. 그들과 나눈 대화를 영화의 소개와 함께 싣는다. 말하자면, 3인의 프랑스 영화인이 한국의 관객에게 새해 출사표를 띄운 셈이다.

영화 단체 유니 프랑스가 파리 현지에서 프랑스 영화인들과의 인터뷰를 주선했다. 좀더 원활한 교류를 통해 자국영화를 해외에 알리겠다는 의지에서 마련한 자리였다. 거기에서 만난 프랑스 영화인 3인이 바로 <타임 투 리브>의 감독 프랑수아 오종, <레밍>의 감독 도미니크 몰, <히든>의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다. 프랑수아 오종과 도미니크 몰을 만난 것은 지난 11월29일이었고, 뒤이어 이틀 뒤인 12월1일에는 줄리엣 비노쉬를 만났다.

“죽음 앞에서 의미를 찾고자 했다”

<타임 투 리브>의 프랑수아 오종 감독

첫 번째 만남. 프랑수아 오종은 국내에서 회고전을 개최했을 만큼 이미 인지도가 높다. <8명의 여인들>과 <스위밍 풀>이 개봉한 바 있고, 그의 DVD 박스 세트가 나와 있을 정도다. 그의 신작 <타임 투 리브>는 그의 전작 중 <사랑의 추억>과 닮은꼴인데, 오종의 말에 따르면 “이번에는 타자의 상실이 아니라, 주인공 자신의 상실을 다뤄보고 싶었다”고 한다. 촉망받는 젊은 사진작가가 암에 걸려 죽음을 선고받은 뒤, 자신의 주변을 하나씩 되돌아본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이 마음을 여는 할머니 역으로는 잔 모로가 백발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결국 게이인 주인공은 불임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부에게 자신의 정자를 기증하는 데 이른다. 국내에서 개봉된 두편의 영화와는 다소 스타일이 다른 차분한 영화다.

프랑수아 오종은 장난기 많은 소년의 이미지를 지녔다. 그러나 나긋하게 미소를 띠며 악수를 한 뒤에는, 앞서 인터뷰를 하고 간 기자들의 명함을 같이 흔들면서 “한국에서 가장 유력한 매체들에서 오신 거네요”라는 접대성 멘트를 잊지 않을 만큼 노련하다. <타임 투 리브>의 프랑스 개봉 하루 전날이었음에도 마치 그냥 하루쯤 쉬러 온 여행객처럼 편안해 보였는데, 그건 모두 그런 노련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한국 관객은 당신이 기교에 능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영화는 좀 다른 것 같다. =사실 <사랑의 추억>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타자를 상실하는 문제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스스로를 상실하는 내용의 영화다. 스스로에 대해서 의문과 질문을 제기해보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작품을 보면 매번 다른 영화처럼 보인다. 스펙트럼이 넓은데 그럴 경우 어떤 장단점이 있나. =거의 1년에 한편씩 하기 때문에 같은 걸 하고 싶지 않고, 매번 새로운 걸 하고 싶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감독은 언제나 자기가 만든 최신작에 역행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정말 맞다고 생각한다. 나의 최근작 <5 곱하기 2>는 커플에 대한 거였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는 남자주인공 1명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타임 투 리브>

-하지만 그 남성은 그냥 남성이 아니라 게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죽음 앞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게이 주인공이 아이를 남긴다는 것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아이를 못 갖는 이성애자 부부에게 아이를 준다는 게 더 의미가 있어 보였다.

-주인공 멜빌 푸포와 할머니 역의 잔 모로와는 어떻게 같이 작업하게 됐나. =멜빌 푸포는 비밀과 신비를 가진 배우라는 점에서 샬롯 램플링과 비슷하다. 내면적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얼굴로 표현해내는 배우다. 잔 모로는 <8명의 여인들> 때도 같이 하려다가 못했었다. 그녀는 내가 단편영화를 만들던 시절에 내 단편영화들을 모두 보고 편지를 보내서 내 영화가 마음에 들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도 해주었고, 나 역시 거기에 감동을 받기도 했다.

-주인공과 할머니가 대화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다. 손자가 할머니에게 자기가 죽을 것임을 알리고 난 뒤 할머니가 묻는다. “왜 그런 말을 나한테 하니?”라고. 손자가 말한다. “할머니는 이제 금방 죽을 거잖아요”라고. 그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 순간 굉장한 비정함 같은 걸 느꼈다. =그 장면은 짧지만 영화 속의 중심이다. 처음으로 주인공이 이 장면을 통해서 마음을 열고 감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그게 할머니였다. 말한 대로 그건 잔인하다. 그러나 사실이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실제 나이를 많이 먹은 잔 모로의 경우 촬영 중에 이 문장을 들을 때마다 칼로 가슴을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그 다음에는 웃었다. 사실, 편집하면서 이 장면을 써야 할지 망설였다. 하지만 역시 진실은 잔인한 경우가 많다.

영화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기가 찍는 배우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하면서 오종은 차 한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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