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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놓치다>의 설경구 & 송윤아

잠깐 차이를 두고 도착한 설경구송윤아는 <사랑을 놓치다>라는 제목의 애잔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서로 마음에 두고 있으면서도 짓궂게 장난을 걸고 흘긴 눈으로 받아치는 초등학교 아이들 같다고 할까, 혹은 속정을 툭툭 치는 말투로만 표현하는 오빠와 그 속을 알면서도 새침하게 토라진 척하는 누이동생 같다고 할까. <광복절 특사> 이후 두 번째로 만난 이들은 사실 처음 영화를 찍으면서는 서로를 그리 깊이 알지 못했다고 한다. 둘만 있는 대목은 고작 한두 장면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선 연인이다. 대학 시절 짝사랑했으나 한번도 입 열어 좋아하노라 말하진 못했던 연수와 십년이 지난 뒤에야 뒤늦게 다가온 연정에 당황해하는 그 짝사랑의 대상 우재. 영화는 두시간에 불과하지만 십년 애정을 응축해 표현해야 했던 설경구와 송윤아는 그처럼 당기고 밀어내며 가슴 태우는 사랑을 익혔나보다. 화사한 크리스마스 장식 앞에서, 꽃으로 꾸며놓은 그네 위에서, 설경구와 송윤아는 어느새 애틋한 연정을 품은 수줍은 연인이 되었다.

이토록 편한 모습의 설경구를 본 게 언제였더라. 껄렁한 자세로 오른손을 슥 내밀며 한쪽 입술 끝을 기분좋게 올린 그의 모습은 최근 접할 수 없는 그것이었다. 한동안 그의 눈엔 핏발이 서려 있었고, 어깨엔 힘이 들어갔으며, 목울대는 뻣뻣했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동안은 내게서 너무 먼 것을 하지 않았나. 내 주위의 디테일한 것들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그래서 이 영화를 선택했어요. 부담없이.” 설경구에게 <사랑을 놓치다>는 <실미도> <역도산> <공공의 적2>가 그의 육신과 영혼에 남긴 멍울을 풀기 위한 마사지 같은 영화다. <공공의 적2>를 끝내고 7개월 동안 휴식을 취한 것도, 그 기간에 “운동이고 뭐고, 정말 아무것도 안 했”던 것도 릴랙스를 위함이었으리라.

이 영화를 통해 그가 가장 하고 싶었던 건 자신의 말을 되찾는 일이었다. “<역도산>에선 일본어를 했고, <공공의 적2>에서는 너무 바른 소리만 했어요. 다 내 말이 아니었던 거지.” <사랑을 놓치다>의 그는 이를 앙다물지 않은 채 삶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그저 툭툭 던진다. 격렬한 감정을 그냥 내지르지 않고 슬쩍 뱉거나 슬쩍 삼켜버린다는 점 또한 그가 훨씬 편해 보이는 이유다. “시나리오에선 좀 그악스럽게 보였던 대목을 많이 죽이자고 했죠. 대신 재밌게 찍자고 했어요. 현장에서 코미디도 많이 넣었어요.” 물론 그의 평안한 모습이 오래갈 수는 없을 것. 그가 형의 복수를 하려는 삼류 건달 역을 맡은 <열혈남아>가 개봉할 때쯤이면 우리는 설경구의 눈빛에 서린 얼마간의 독기와 만나게 될 것이다.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놓칠 뻔했다. 검은 재킷을 입고 크로스백의 끈을 꼭 쥔 채 들어온 송윤아는 동그란 눈동자만 깜빡거리며 조용하게 서 있었다. 이토록 새침해 보이는 그녀에게 뭐라 말을 걸어야 할까. 그러나 의외로 높고 맑은 목소리가 울리더니 재잘재잘, “연수라는 아이는요…”라는 다정한 호칭을 써가며 영화 이야기가 쏟아져나온다. 서른넷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천진하다. “이상하게 삼십대 여배우를 거론할 때 제 이름은 빠지더라구요. 송윤아가 영화에서 이루어놓은 게 없어서인지, 송윤아라는 배우를 나이와 연관짓지 않는 건지(웃음). 이십대 후반엔 삼십대를 걱정했는데 막상 삼십대가 되고 보니 내가 아직도 너무 어린 것 같고 알고 싶은 게 많아요”. 이십대엔 서른살 먹으면 뽀뽀도 안 하는 줄 알았다며 웃는 모습이, 다시 한번 나이가 무색하다.

<불후의 명작> <페이스> 등으로 천천히 영화경력을 다져온 송윤아는 <사랑을 놓치다>가 너무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홍보하는 인사치레만은 아니다. “영화에서 갈 길이 멀어요. <사랑을 놓치다>는 그 길을 뚫기 위한 돌파구가 될 것 같아, 이런 얘기하면 안되겠지만(웃음) 모두가 우리 영화 잘되기를 기원해도, 저한테는 그 결과가 특히 중요하거든요”.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는 영화. “답답하고 못나 보일지 몰라도, 이십대 중후반을 넘긴 여자라면 그 마음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연수는 그녀에게 그토록 진한 여운을 남기고 떠났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가 아니라 그저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처럼 송윤아는 어느 순간 카메라의 존재를 지우고 나직한 사랑의 시간을 들려주었다.

<사랑을 놓치다> 누가 누굴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제3자가 봤을 때는 이 남자가 못났어도 이 여자에겐 너무 예쁘고 귀여울 수 있는 거다. <사랑을 놓치다>의 한쪽에는 그렇게 설명되지 않는 사랑이 있다. 그게 송윤아가 연기한 연수다. 또 한쪽에는 내가 맡은 우재가 있다. 연수의 마음을 알지만, 사랑이라고까지는 생각지 않는, 연수를 그저 친구라고만 생각하는, 그런 사람. 그러다가 연수가 지쳐 멀어져가니까, 사랑을 놓치니까, 우재는 ‘아, 이게 사랑이구나’하고 깨닫는다. <사랑을 놓치다>는 그렇게 사랑을 알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따뜻하고 밝은 우리들의 마음을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2005년 놓치다, 2006년 붙잡다 <공공의 적2>는 남을 가르치려는 듯한 대사가 입에 붙지 않았고, <사랑을 놓치다>는 내게 동선이 잘 맞지 않는 느낌의 영화였다. 2005년의 느낌은 정체였다. 의욕이랄까, 열정이랄까 하는 것을 놓쳤던 모양이다. 지금 촬영 중인 <열혈남아>를 기점으로 내가 잃었던 뭔가를 붙들어보려고 한다.

<사랑을 놓치다> 살다보니 사랑은 타이밍인 것 같았다. 그 순간엔 너무 가슴 아프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방해하는 것만 같아도, 지나고 나면 인연이 아니었다고, 나에게도 그에게도 더 좋은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랑을 놓치다>는 남자와 여자에게 있어 그런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는 영화다. 그렇다고 답답하기만 하진 않을 거다. 우재와 연수는 어긋날 수밖에 없는 사건을 만나고, 같은 순간에 서로 다른 생각을 하게 되니까. 그리고 이런 영화가 정말 잘돼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자극적이고 분명히 꽂히는 영화가 많아졌는데 <사랑을 놓치다>가 사랑을 받으면 영화의 영역이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2005 놓치다, 2006 붙잡다 무언가 놓치고 살진 않는다. 만족한다는 뜻이 아니라,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니, 다만 소중한 걸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다. 2006년은 영화만 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껏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살았더니 새로운 영화를 할 때마다 너무 낯설었다. 또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고. 그래서 올해는 영화만 하고 싶고, 앞으로도 영화를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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