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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마켓 만드는 시나리오 작가 심산
김수경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6-01-13

<비트> <태양은 없다>의 시나리오 작가, 한겨레문화센터에서 7년 반 동안 900명이 넘는 후학을 길러낸 시나리오 선생님,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sgk) 공동대표 심산을 만났다. 그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DB 사업은 1년 반 동안 12편의 시나리오 계약을 성사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그동안 영진위 공모전 당선작의 영화화 비율이 평균 5%선에 머물던 전례를 생각하면 시나리오 DB사업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운영위원회는 이 사업을 시나리오 마켓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더욱 활성화할 계획이다. 오는 2월 국내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문을 여는 시나리오학교 심산스쿨에서 심산 작가와 나눈 시나리오 마켓에 관한 이야기.

-오랫동안 유지됐던 영진위의 기존 공모전과 제도적 변화에 대해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영화진흥공사 시절부터 시나리오 공모전의 목적은 작가의 발굴이었다. 임상수와 김기덕 같은 감독들이 이곳을 통해 입문한 점만 봐도 성과는 분명하다. 최근에는 시나리오 작가 김해곤이 당선작 <보고 싶은 얼굴>로 감독 데뷔를 준비 중이다. 영진위도 그 명맥을 이어가면서 봄, 가을에 공모전을 열었다. 그러다가 2003년부터 공모전을 1회로 줄이고 시나리오 DB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영진위에서 시나리오작가협회에 위탁 운영을 맡긴 시나리오 뱅크 사업이 있었으나 네티즌과 영화인들의 문제 제기가 많았다. 이후 위탁 공고를 냈지만 반년간 어떤 단체도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영진위가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시나리오 공모와 시나리오 DB가 중복된다는 정책적 판단이 생겼다. 시나리오 DB 2기 운영위원회가 꾸려지면서 영진위는 이 두개의 사업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운영위원회가 6개월 동안 여러 번의 설문조사와 연구를 거쳐 내놓은 답안이 시나리오 마켓이다.

-기존 시나리오 공모전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인가? 시나리오마켓은 시나리오 DB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시나리오 마켓은 시나리오 공모전과 DB가 통합하는 모델이다. 작가를 발굴하는 공모전의 성격은 그대로 살아 있다. 시나리오 마켓은 1일부터 시작됐고 인터넷 웹사이트도 현재는 scenariodb.or.kr이지만 1월 안에 scenariomarket.or.kr으로 변화된다. 시나리오 DB 운영위원회도 시나리오 마켓 운영위원회로 바뀐다. 예를 들어 A라는 인물이 이 마켓에 시나리오를 내놓는 것은 모든 마켓 구성원이 그것을 읽는 데 동의하는 것이다. 먼저 작품을 제출할 때 작가는 등록비용 2만원을 마켓에 낸다. 이렇게 제출된 모든 작품을 한달 단위로 심사한다. 한달에 50∼60편이 들어오는데 세명의 심사위원이 심사하기 때문에 과거 공모전처럼 900편을 보름 동안 심사하는 방식보다는 유연하고 합리적이다. 매월 5편 내외의 작품을 추천작으로 선발한다. 추천작들은 시나리오 마켓 사이트의 메인 메뉴에 오르고 회원사들에 메일로 발송된다. 3개월마다 선발된 15편의 추천작을 월별 심사와는 다른 다섯명의 심사위원이 검토한 뒤 최우수작 1편, 우수작 2편을 뽑는다. 이때 창작격려금으로 최우수작 1편에 1천만원, 우수작 2편에 각각 500만원씩 지급한다. 공모전과 비교하면 기회가 2회에서 4회로 늘어난 것이다. 영진위 공모전이 일반 공모전보다 좋은 면은 저작권이 공모전 주최자에게 귀속되지 않는 것이다. 시나리오 마켓도 마찬가지로 해당 시나리오가 판매될 경우 계약금액의 3%만 마켓에 납부하면 된다. 시나리오 DB 시절에 판매된 12편도 모두 계약금액의 3%를 납부했다. B라는 인물이 시나리오 마켓에 등록한 이후 특정 공모에 당선되거나 영화사와 별도로 계약했다면 3%를 내야 한다. 할리우드는 중개료만 10% 수준이다. 3%의 비용은 작품들의 저작권 보호, 프로모션, 심사 비용으로 쓰여진다. 영진위는 1년에 한번 국정감사를 받기 때문에 투명성은 보장될 것이다. 할리우드 시나리오 에이전시가 하는 역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저작권 보호, 둘째는 프로모션이다. 동일한 목적의 한국영화 시나리오 마켓이 그들과 다른 부분은 공공성, 공정성, 투명성을 기준으로 작가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한국영화 전체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시나리오 DB도 그랬지만 심사방식의 문제, 작품 공개와 도용에 대한 우려를 두려워하는 작가들이 있을 것 같다. =과거의 심사가 밀실 심사였다면 이번 시나리오 마켓의 방식은 유리방에서 진행한다고 보면 된다. 제출자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도 로그인을 해서 시나리오를 살펴볼 때 자신의 정보가 기록되기 때문에 도용당할 위험은 전보다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트리트먼트는 법률적 분쟁에 휩싸일 소지가 많다는 판단에서 시나리오 마켓에서는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시나리오 마켓의 저작권 보호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그럼에도 저작권을 도용당한 피해자가 발생하면 상세한 진정서를 일단 운영위를 제출해야 한다. 먼저 그것을 심사하고 해당 영화사와 작가를 불러 직접 논의한다. 사안이 심각하다면 운영위원회의 법률자문단을 통해 법적으로 제소한다. 법률비용은 운영위원회가 부담한다. 처음 창작자가 낸 2만원의 저작권위탁 중개비용이 법률비용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지나치게 시장 위주로만 진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발이 있을 수 있다. =현재 한국 영화산업은 할리우드처럼 시장임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시나리오 마켓에서도 추천작이나 분기별 우수작 선발을 통해 시장으로 편향되는 면을 보완할 수 있다. 상업영화로 당장 만들 수 없어도 좋은 작가로 판단되면 추천작으로 선발하거나 창작격려금을 지급하는 방법이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나 신인 작가들에게 바뀐 제도에 대해 조언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무엇보다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최대한 높여서 만족할 만한 시점에 제출하는 것이 좋다. 시나리오 마켓에 작품을 내놓는 것은 심사를 받는 동시에 한국 영화계에 공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의 유명한 격언 중에 ‘엄마에게 준 자기 신의 첫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공모전처럼 제한된 기한이 없기 때문에 최대한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최선이다. 추천작으로 선정된 작품을 쓴 작가는 특별히 관리할 계획이다. 작가블로그를 만들어 프로파일이나 심사평을 병기해서 홍보하고 주요 회원사에도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기존의 시나리오 DB에 등재된 작품은 어떻게 처리되는가. =현재 시나리오 DB에 371편의 시나리오가 있다. 이들에게는 세 가지 방식의 선택을 유도한다. 첫째, 지금처럼 DB로 남겨지는 것이다. 둘째, 새 작품으로 마켓에 등록하는 것이다. 셋째, 본인이 미흡해서 고치고 싶다면 일단은 내렸다가 향후에 새로 등록하는 것이다. 시나리오 마켓의 저작권 위탁 계약기간은 1년이다. 새롭게 등록한 작품도 1년간 등재했다가 1년이 지나면 삭제할 것인지 남겨둘 것인지 창작자에게 문의한다.

-기성 작가의 작품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기성 작가도 시나리오를 넘기면 제작자가 2주 정도 지난 뒤에 ‘바빠서 못 봤다. 미안하다’ 그러다가 두달 뒤에 보고는 ‘이건 좀 고쳐야 하지 않나’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다보면 1년이 훌쩍 지나간다. 작가들도 점점 지치고 소모적인 방식이다. 기성 작가 중 이미 마켓에 등록하고 블로그를 만든 사람들도 있다. 내가 소속된 시나리오작가조합에도 이 부분에 관해 심도있게 논의하고 있다. 마켓 안에 시나리오작가조합의 전용 블로그를 만들 생각이다. 기성 작가들도 편안하게 이용해줬으면 한다.

-시나리오 마켓이 장기적으로 한국 영화산업에 기여한다면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마켓 제도가 정착되면 한국영화 프리 프로덕션에 대단한 효율을 도모할 수 있다. 생판 얼굴도 모르는 제작자를 찾아가서 시나리오를 건네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이윤 추구나 사적인 방식이 아니라 공공적 성격으로 이러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혁명적인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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