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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우리가 놓친 외화 10 [8] - <카나리아>

1995년 옴진리교의 지하철 독가스테러 사건은 일본인의 마음에 치료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 정신적 공황을 아오야마 신지는 <유레카> 같은 한편의 ‘영상시’로 쓰기도 했지만, 정면으로 이 사건에 맞서는 영화는 좀체 나오지 않았다. 2005년 3월 <카나리아>가 개봉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개봉 전부터 도쿄필름엑스국제영화제의 오프닝작으로 선정되었던 이 작품은 2005년 9월 런던에서 열린 13회 레인댄스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아동학대, 원조교제 같은 사회 문제부터 ‘아버지’에 대한 부정까지, 무거운 테마에 대한 메시지를 쏟아대며 거친 에너지가 제멋대로 넘치는 작품 자체에 대해선 호불호가 엇갈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모든 언론과 비평이 일제히 “그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고 말한 것은, 그만큼 이 상처를 응시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소년, 소녀를 맡은 이시다 호시와 다니무라 미쓰키는 <아무도 모른다>의 야기라 유야에 비견될 만큼 깊은 인상을 남기며 극찬을 받았다.

감독은 <환생>으로 알려진 시오다 아키히코. 구로사와 기요시 등과 함께 릿쿄대 영화동아리 출신인 그에게 <카나리아>의 출발은 95년 옴진리교 사건 당시의 한 이미지였다. 교단에 수용되었던 어린이들의, 카메라를 향했던 적의에 가득 찬 눈. 아마도 강제로 교단에 들어갔을 어린이들이 또 한번 강제로 보호소로 보내지는 순간이었다. 제목인 ‘카나리아’는 옴진리교 본부에서 수거한 새장 속의 새에서 따왔다. 독가스에 민감한 카나리아는 인간들에 의해 ‘독가스 감지기’로 이용되어왔다. “저항할 수도 없이, 싸움의 최전선에 내몰린 약자”인 카나리아에서 감독은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았다.

12살 소년이 맨발로 달린다. 그의 이름은 고이치. 사이비 종교집단 ‘너바나’가 테러사건을 일으킨 뒤 보호시설에 보내졌던 너바나의 어린이들 중 끝까지 반항적이던 그를 외할아버지도 외면했다. 할아버지는 사건의 주모자가 되어 지명수배된 고이치의 엄마에 대해 “완전히 인생의 실패자다”라는 말을 남긴 채 고이치의 여동생 아사코만 데리고 떠났다. 녹슨 드라이버를 가슴에 품은 채 고이치는 아사코를 되찾으러 시설을 탈출한다.

탈주길에서 소년은 12살 소녀 유키를 만난다. 엄마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폭력적인 아빠를 피해 곧잘 가출하던 유키는, 고이치 덕분에 원조교제 상대 어른으로부터 성폭행당할 위기에서 벗어나고 은혜를 갚겠다는 구실로 소년을 따라나선다. 간사이 지방에서 도쿄까지 이들은 달리고 또 달린다.

고이치와 유키의 여행길에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주변인이다. 숲 속에서 만난 기묘한 레즈비언 커플(<쌍생아>의 료가 이중 한명을 연기한다)이나, 도쿄에서 만난 너바나교에서 이탈한 전 신자들(이전 교단에서 카리스마적 존재였던 이자와를 <돌스>의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맡았다)은 삶의 중심에서 밀려난 이들이다. 이자와는 고이치에게 묻는다. 네게 너바나는 무엇이었냐고. “내게 너바나는 꿈이고 미래였다.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를 처음엔 제대로 보지 못했다. 고이치의 회상신에 등장하는 너바나에서의 생활은, 차마 눈을 뜨고 지켜보기 힘들다. 곰팡이 핀 빵과 마른 고구마 한 조각이 전부인 식사를 던져버린 고이치는 체벌방에 끌려가 두건으로 얼굴을 쓴 채 거꾸로 매달린다. 고이치의 어머니는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인간은 언젠가 죽고 저 세상에서도 너희들과 함께 있고 싶기 때문에’ 지금의 생활을 감내하라 한다. 사회적인 문제로 본다면 이건 아동학대지만, 그보다 더 큰 두려움에 몸이 떨린다. 인간을 상상조차 하기 끔찍한 지경에 내모는 건 무얼까.

답은 없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을 못하는 부모세대와 사회에 대해, 고이치는 원망이나 욕을 하는 대신, 자신의 삶을 ‘살아나갈 것’이라고 되돌려준다. 폭풍우 몰아치는 영화의 후반부, 마침내 찾아낸 할아버지 앞에 선 고이치에게서(이 장면은 직접 체험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신’의 모습을 보는 듯한 묘한 감정을 느꼈다. <카나리아>는 보는 이에 따라 성장영화일 수도, 사회파 영화일 수도, 어쩜 구원에 관한 영화일 수도 있다. 직설적인 메시지를 뱉어대다가도, 눈먼 할머니의 종이학이나 안개 가득한 숲 속 장면처럼 절망을 위안하는 기적과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 적어도 말할 수 있는 건, 무력한 사회에, 무력한 세대에, <카나리아>는 해머와 같은 영화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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