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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브라더스> 제작기 [1]
이다혜 2006-01-17

장 자크 아노 감독은 표정이 풍부하고 친절하며 말을 즐긴다. 그는 호랑이의 표정과 몸짓을 흉내내가며, 마치 손녀에게 “옛날 옛적 숲 속에서…”로 시작되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생동감있게 두 호랑이의 로드무비 <투 브라더스> 제작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투 브라더스> 제작기를 아노 감독의 목소리를 빌려 쓰고 싶었던 건 그래서였다. 다음 글은 2005년 제10회 부산영화제 기간 중에 있었던 장 자크 아노 감독과의 인터뷰와 장 자크 아노 감독이 제작과정을 쓴 <투 브라더스: 영화에 관한 우화, 그리고 촬영 뒷이야기>를 참고해 재구성한 것이다. 다음 글을 읽거나 <투 브라더스>를 볼 때, 솜사탕을 쓴 것처럼 하얀 머리칼을 한 인상 좋은 프랑스 할아버지가 호랑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영화를 찍는 모습을 상상하면 더욱 즐거울 것이다.

우리가 ‘호랑이’라고 부르면 호랑이는 우리를 잡아먹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호랑이 님’이라고 부르면, 그래도 호랑이는 우리를 잡아먹을 것이다. - 인도 속담

왜 호랑이인가? 곰 다음 호랑이 얘기라니, <동물의 왕국>이라도 찍을 거냐고? 우연이라기엔 절묘한 일인데, 한국 건국신화에 곰과 호랑이가 나온다더라. 난 곰과 호랑이, 마늘을 모두 좋아하니까 어쩌면 전생에 한국인이었던 걸까? 하하. 가장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그 질문에 답하려면 <베어>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불을 찾아서> 때 함께 일했던 각본가 제라르 브라슈는 어렸을 때 좋아했던 책이라며 <그리즐리 킹>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게 건네주었다. 강력하지만 늙은 수컷 곰과 그 곰이 우연히 데려다 키우게 된 부모 잃은 아기 곰의 이 이야기는 자연 다큐멘터리가 아닌, 말을 할 줄 모르는 위험한 육식동물들을 주인공으로 한 픽션이었다.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찍겠다고 마음먹은 뒤, 나는 자료조사차 동물원에 자주 가서 어떤 동물을 주인공으로 할까 궁리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호랑이였다. 나는 호랑이의 눈에 매혹되었지만 곰은 두발로 설 수 있으니 사람들이 동일시하기가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개봉하고 보니 동물의 직립하는 능력 같은 것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하하. 게다가 <베어> 개봉 뒤, <타임>의 리처드 시스켈이 “<베어>와 자연을 다룬 영화의 관계는 <스타워즈>와 SF영화의 관계와 같다”며 추켜올린 것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때 황홀한 호랑이의 눈이 다시 떠올랐다. 냄새에 반응해 움직이는 곰의 코는 충분히 표현력이 좋았지만 호랑이의 눈은 그보다 강렬한 시각적 효과였으니까. 호랑이는 시력에 의지해 동물을 사냥하는 포식자이기 때문에 눈만 봐도 호랑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곰의 눈은 돼지를 닮아서 너무 작고 표정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내내 아쉬웠던 것도 한몫 했다. 하지만 나는 다음 작품으로 <연인>과 <티벳에서의 7년>을 선택했다. 강렬한 불꽃같았던 호랑이의 눈을 다시 떠올린 것은 전쟁과 화염, 그리고 피가 난무했던 <에너미 앳 더 게이트>를 찍고 나서였다.

구상 - 식민지 시대의 동남아시아 그리고 호랑이들

장 자크 아노 감독

<투 브라더스>를 본격화한 계기는 식구들과 예멘의 소코트라 섬으로 떠났던 휴가였다. 텐트 안에 마련한 침상에 들 때마다 나는 동경해 마지않던 앙코르와트 사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아기 호랑이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1989년 아내와 함께 처음 캄보디아에 갔을 때의 놀라움은 지금까지도 예술적 충격으로 남아 있다. 앙코르와트는 식민지 시대에 대한 향수와 자연의 신비로움, 심지어 영혼의 존재까지 일깨웠다. 수풀에 둘러싸인 사원 안에 아기 호랑이가 앉아 있는 모습의 고대 판화를 본 기억을 되살리며, 나는 자기 전에 인도양을 바라보며 텐트 옆에 램프를 켜놓고 매일 두세 페이지씩 써내려갔다. 파리로 돌아온 나는 나는 호랑이에 대한 책을 300권 정도 읽었고, <에너미 앳 더 게이트>의 공동각본을 맡은 알랭 고다르와 본격적으로 각본을 썼다.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우리는 이야기를 구상했다. 한 사람이 문장을 떠올리면 다른 사람이 형용사를 덧붙이고, 문장을 완성했다.

나는 전설이나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전설이 흔히 그렇듯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동남아시아의 신비로운 사원들이 유럽인들에게 발견되기 시작한 시대라는 정도뿐. 이때를 선택한 이유는 식민지 시대의 동남아시아를 그리고 싶어서였다. 정글, 신비로운 폐허, 부잣집 아이, 사냥꾼, 아름다운 원주민 처녀, 왕자와 그의 약혼녀, 고위공직자와 야망있는 그의 아내, 그리고 서커스와 동물조련사가 나오는, 내가 어렸을 적 동경했던 세계를 나와 고다르는 만들어갔다. 부모를 잃은 두 마리의 아기호랑이가 이별하고 다른 운명을 겪다가 마침내 다시 만난다는 모험담은 신화 영웅담 구조를 차용했다. 어렸을 적 읽은 동화 속 영웅들은 흔히 고아가 되거나 납치당하지 않던가! <투 브라더스>에서 쿠말과 샹가는 극 초반부터 상이한 성격을 보여준다. 둘은 형제지만 쿠말은 용감하고, 샹가는 소극적이다. 하지만 둘은 인간에게 잡혀 다른 성장과정을 거치며 성격의 변화를 겪는다. 용감했던 녀석은 서커스 훈련을 받으면서 매사에 흥미를 잃고 무력해진다. 겁이 많았던 녀석은 갇혀 있으면서 성격이 포악해진다. 여기에 라울이라는 소년이 등장한다. 라울은 호랑이와 코끼리, 원숭이, 그리고 호화로운 식민지 유물에 둘러싸여 성장한 어린아이다. 라울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어린 샹가를 키우면서 엄청난 애착을 갖지만, 어떤 동물들은 인간 세상의 일부가 될 수 없다는 가슴 찢어지는 교훈을 얻는다. 라울은 위대한 사냥꾼인 맥로리를 숭배하는데, 맥로리는 내가 어렸을 적 동경했던 탐험가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촬영 - 동남아시아에서의 169일

나는 호랑이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인도 라자스탄의 란탐보어 국립공원과 호랑이 보호구역을 찾았다. 란탐보어 국립공원에는 1천년 넘은 란탐보어 요새의 폐허가 그대로 있는데, 이곳에는 내가 대본에 쓴 것처럼 호랑이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이로써 나는 <투 브라더스>가 실제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수컷 호랑이는 영역 분쟁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아기호랑이를 죽이거나 무시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놀랍게도 <투 브라더스>에서와 같은 평화로운 교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란탐보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수컷이 아기를 돌보는 암컷을 찾아와 가족이 함께 사냥을 하고 먹이를 나누어 먹으며 함께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촬영을 시작하면서 나는 오랜 친구들을 불러모았다. 라인프로듀서 자비에르 카스타노, 나와 세편의 작업을 함께한 편집기사 노엘 브아종, <베어>에 참여한 동물조련사 티에리 르 포르티에, <티벳에서의 7년>의 미술감독 피에르 퀘펠린이 바로 그들이다. 촬영의 경우, 이전 영화들을 함께했던 촬영감독은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해야 한다는 데 겁을 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장 마리 드레주와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호랑이의 예측 불가한 움직임과 조명의 경제성을 고려하면 디지털카메라는 필수적이었다. <베어>를 35mm 카메라로 촬영할 때 12분마다 새 필름을 갈아 끼워야 했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을 많이 놓쳤다. HD 카메라는 멈추지 않고도 50분 이상 촬영할 수 있으니까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 제격이다. 격투장에서 호랑이 형제의 결투를 연출할 때를 예로 들자면, 두 호랑이가 처음부터 기세좋게 싸운 것은 아니었다. 처음 25분 동안 둘이 사이좋게 노는 모습을 찍으면서 기다린 결과, 돌연 둘이 싸우기 시작하는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35mm 카메라였다면 포착할 수 없었던 순간이다.

우리는 8개월간 169일을 촬영에 투자했다. 3개월은 캄보디아에서 찍었고, 1개월은 타이에서, 그리고 실내 장면과 사운드 작업은 파리에서 진행했다. 나는 촬영지를 직접 헌팅했다. 기꺼이!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은 물론, 시엠 립 동쪽으로 20마일 떨어진 곳에서 시작되는 크발 스피엔 강은 누구라도 넋을 빼앗길 장관을 보여준다. 우리가 찾은 촬영지 중 푸탕 마을의 몬돌 키리 산악지역은 우연히도 캄보디아의 야생 호랑이 서식처와 가까운 곳이었다. 하지만 스탭들의 현지 적응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37도에 달하는 기온만으로도 죽을 맛이었는데 습도는 100%에 가까웠다. 너나 할 것 없이 땀을 비오듯 흘렸고, 대부분 피부병을 앓았다. 10명가량은 장티푸스에 걸렸다. 전갈이나 거대한 독거미에 물린 스탭도 있었고, 2m가 넘는 비단뱀이 세트를 덮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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