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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더 로드, 투> 제작기 [1]
황혜림 2006-01-18

‘On the road’, 곧 ‘길 위에서’란 문구가 갖는 어감이란 언어의 차이를 막론하고 비슷한 게 아닐까. 어디로 가야 할지 조금은 막연한 표랑, 또는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거라는 미묘한 설렘이 함께 숨쉬는, 그렇게 끝이 아니라 아직은 진행 중인 미완의 여행 같은 정서. <온 더 로드, 투>는 2005년 봄 유럽 투어의 길에 오른 윤도현밴드의 궤적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이자, 음악이란 길 위에서 10여년 동안 쉼없는 여행을 계속해온 그들의 걸음을 곱씹게 만드는 현재형 기록이다. 국내 대중음악 환경에서는 쉽지 않은 꾸준함으로 대중적인 록밴드의 입지를 다져온 윤도현밴드와 공포영화의 얼개를 빌려 조숙한 십대 소녀들의 성장기를 촘촘한 세밀화로 담아낸 데뷔작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이후 6년 만에 장편 연출을 맡은 김태용 감독의 음악 다큐멘터리. 국내에서 전례가 별로 없는 장편 음악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생소함도 생소함이지만, <온 더 로드, 투>는 무엇보다 카메라를 사이에 둔 윤도현밴드와 김태용 감독의 만남만으로도 일단 궁금해질 법한 영화다. 2005년 3월 영국 촬영을 시작으로 오랜 후반작업을 거쳐 1월5일 새해 극장가를 찾아온 <온 더 로드, 투>의 여정을, 런던 촬영 현장의 기억과 함께 들여다보자.

2005년 4월12일 수요일 저녁 6시. 영국 런던의 중심가에서 약간 북쪽, 캠든 하이 스트리트에 자리한 공연장 코코 주변은 서울 어느 거리의 축제 분위기로 술렁이고 있었다. 유럽 투어의 막바지, 3월29일의 첫 공연에 이어 두 번째로 런던을 찾은 윤도현밴드의 라이브를 보기 위해 모여 든 한국 관객이 길을 메운 덕분이다. 코코는 19세기 후반, 빅토리아 시대의 극장으로 문을 연 이래 공연장으로 개조되면서 섹스 피스톨스 같은 70년대 영국 펑크밴드들부터 마돈나까지 다양한 뮤지션들이 거쳐갔다는 라이브클럽. 9시 반이 넘어 윤도현밴드가 무대에 오르자 객석에서는 환호성과 함께 카메라의 물결이 일렁였고, 무대 앞과 중간에 설치된 돌리와 지미집 등 곳곳에 포진한 십수대의 카메라들 또한 일제히 바빠지기 시작했다. 유럽 투어를 위해 영어로 개사, 편곡한 <담배가게 아가씨>의 영어 버전 <Cigarette Girl>을 신명나게 부르다가 무대에서 뛰어내리는 윤도현과 그의 선동에 열광하는 객석까지 컷없는 무대 위의 액션이 진행되는 동안, 김태용 감독과 스탭들은 한껏 흥이 오를 대로 오른 라이브가 선사하는 가장 생생한 스펙터클을 놓칠세라 무대 뒤의 모니터실과 공연장을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윤도현밴드의 유럽 투어 중에서도 하이라이트인 공연이자, 투어의 길에 나선 밴드의 여정을 담는 김태용 감독의 음악 다큐멘터리 <온 더 로드, 투>의 사실상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촬영이었다.

10년차 인기밴드, 맨땅에 헤딩하다

국내에서는 록밴드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지만, 해외 음악시장에서는 싱글 하나 발표한 적 없는 윤도현밴드의 유럽 투어 소식은 아무래도 갑작스러웠다. “우리가 아마 첫걸음이란 생각이 들어요.”(박태희) “우리가 쌓았던 네임 밸류의 후광없이 그냥 몸으로 딱 시작해야 하는 거니까, 그게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까….”(허준) 유럽 투어와 <온 더 로드, 투>의 출발선, 인천공항에서 윤도현밴드 멤버들이 밝힌 각오대로, 한국 밴드의 본격적인 유럽 투어는 처음인데다 밴드와 음악을 알릴 만한 물밑 작업 없었던 터라 은근히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3월22일부터 4월17일까지 영국의 하이위컴비와 런던, 네덜란드의 헬몬트,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 이탈리아의 밀라노 등 4개국 7개 도시를 도는 윤도현밴드의 유럽 순회공연. 투어버스에 몸을 실은 채 하루 10시간 이상씩 낯선 길 위를 달려 크고 작은 클럽 무대에 섰던 27일은 무엇을 위한 여정이었을까.

몸에 익은 일상을 떨치고 낯선 길에 오를 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딱 꼬집어 설명하긴 힘들다 해도 떠나는 그 순간에는 절실하기 그지없을, 여행에 시동을 걸어주는 이유들. 재외동포들을 제외하면 거의 알아줄 이 없을 낯선 유럽 땅에서의 투어가 윤도현밴드한테 “맨땅에 헤딩”임은 물론, “맨땅에 헤딩”을 위해 떠난 거나 마찬가지임을 알게 된 것은 두 차례의 런던 공연 틈틈이 가진 인터뷰에서였다. 보컬에 윤도현, 기타에 허준, 베이스에 박태희, 드럼에 김진원. 윤도현밴드란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2집 때부터지만, 2000년 6월에 새롭게 가세한 허준을 제외하고 처음부터 세션으로 합류했던 멤버들이 함께한 시간은 벌써 10년이다. <꿈꾸는 소녀> 같은 담백한 포크록부터 <너를 보내고> 같은 서정적인 선율의 록발라드, <죽든지 말든지> 같은 묵직한 하드록을 넘나드는 사운드, 진솔하면서도 건강함이 배어나는 가사와 태도, 라이브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시원스러운 보컬이 매력인 윤도현밴드의 음악은 꾸준히 고정 팬층을 확보해온 스테디셀러였다.

5장의 정규 음반과 수많은 공연을 통해 차근하게 이력을 쌓아왔던 윤도현밴드의 행보에 아찔한 가속이 붙은 것은 2002년. 언급하기도 새삼스러울 만큼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6월 월드컵을 전후로 곳곳에서 줄기차게 울려퍼진 <오! 필승 코리아>의 선풍적인 인기와 더불어 밴드는 순식간에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이를 계기로 윤도현밴드가 더욱 폭넓은 청중과 만나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오! 필승 코리아>의 성공이라는 단면이 밴드의 전부인 양 부각되면서 생겨난 선입견, 때로는 많은 사람들이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대중성이라는 틀에 대한 부담 또한 적지 않았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스타덤의 달고도 쓴 후유증, 그리고 대중성과 “완성이란 게 없을” 밴드와 음악의 진화에 대한 고민. “윤도현밴드가 앞으로 계속 갈 수 있을까”에 대해서 의구심이 생기기도 하고, “기차는 철로를 달려야 하는데, 윤밴이란 기차가 철로를 달리지 않고 논두렁으로 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한 시점이었다.

이렇게 안주해도 되는 건지,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는 아닌지 혼란스러울 무렵 윤도현밴드는 우연한 여행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6집 <YB Stream> 발표 뒤 전국 순회공연을 마치고 휴식기를 가졌던 2004년 봄, 김진원이 드럼 전문학교로 이름난 드럼테크에 다니기 위해 두달 정도 런던에 체류할 때였다. 다른 멤버들이 그를 만날 겸 런던에 왔다가 영국 인디 레이블 운영자를 알게 돼 작은 클럽 공연을 했는데, 결국 초심으로 돌아간 듯 단출하면서도 즐거웠던 그 공연의 기억으로 유럽 투어를 추진하게 된 셈. 당시 함께 무대에 섰던 영국 인디밴드 스테랑코와의 인연은 유럽 투어의 동행이 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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