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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딱하게 보기] 캐릭터의 나이테, <C.S.I>

꽤 재미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처음부터 <C.S.I>의 마니아가 되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증거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에 더 관심이 있었다. 루미놀 반응을 찾고, 유전자 검사를 하고, 흙의 성분을 따져 어느 지역 것인지 알아내고, 곤충의 성장 정도로 사망일시를 알아내는 과정을 보는 것은 물론 재미있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게임이다. 잘 고안된 퀴즈를 푸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로 앤 오더> 같은 수사극을 더 좋아했다. 증거보다는 사람들의 관계와 심리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드라마. 기껏 증거를 찾아 범인을 잡았더니, 재판 과정에서 모두 뒤집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변호사의 말장난이나 농간 때문에, 명백한 범인이 당당하게 풀려나는 꼴도 봐야 한다. <로 앤 오더>에서는 인간의 마음만이 아니라, 이 사회의 시스템이란 게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도 보여준다. 결국 시스템이란 허구적인 보편타당일 뿐이다.

하여튼 <C.S.I>는 띄엄띄엄 봤다. 공중파와 케이블에서 방영할 때마다 시간이 나면 봤지만, 일부러 찾아본 건 아니다. 마이애미와 뉴욕의 스핀오프도 그랬다. 단지 개인적인 취향으로, 주인공의 카리스마는 마이애미가 더 낫다고 생각했다. <C.S.I 마이애미>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카루소는, 한때 <NYPD 블루>로 스타덤에 오르고 할리우드에도 진출했다가 패퇴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너무 건방을 떨긴 하지만, 그럴 만한 자격은 있었다. <C.S.I 뉴욕>의 게리 시니즈 역시 뉴욕에 걸맞은 어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C.S.I>의 그리썸에게는 그렇게 끌리지 않았다. 그건 분명 선입관이고, 편견이었다.

요즘 <C.S.I>의 4, 5시즌을 보다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갑자기 <C.S.I>의 열광적인 팬이 되었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단지 시즌이 오래될수록 깊어지는 그 시선에 공감하게 되었을 뿐이다. 한 에피소드에 간호사를 살해한 의사가 나온다. 20대의 간호사를 사랑하면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했던 중년의 의사. 그러나 젊은 애인 의사가 생기고, 바로 버림받은 남자. 그 남자는 잔인하게 간호사와 그의 애인을 살해한다. 완벽하게 현장을 처리한 의사는 결국 풀려나지만, 그리썸은 묘한 말을 한다. 그는 의사의 동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오로지 일밖에 모르고, 성실함과 재능으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중년의 남자. 하지만 중년의 한 고비에서 자신이 이룬 것들을 회의하게 된다. 그때 만난 젊은 여인. 그걸 단순히 불장난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썸은 그 의사처럼 나락에 떨어지지는 않지만, 그 느낌이 무엇인지만은 정확히 알고 있다. 인생의 절반을 넘겨버린, 이제는 아래로 내려가는 것만이 남은 이들이 느끼는 그 무엇. 그걸 거부하거나, 무리하게 붙잡으려 하면 추해지고 비참해진다.

수사극은 당연히 범죄의 수사에 심혈을 기울이지만, 나는 그 안의 사람들에게 더 관심이 간다. <C.S.I>가 한 시즌씩 거듭되면서, 그 안의 사람들도 세월의 무게가 쌓여간다. 나는 그런 연륜을 보는 것이 흥미롭다. 그리고 그리썸처럼 동질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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