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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막내린 SBS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신데렐라 비틀기’ 아쉬운 초심

에스비에스 주말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가 22일 16부작으로 막을 내렸다. 신데렐라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때문이든, 시청률에 대한 강박 탓이든 이야기 흐름을 자연스럽게 마무리하는 결말이기보다는 ‘용두사미’ 식의 아쉬운 뒤끝이었다.

가짜 백만장자 영훈(고수)은 가까스로 영화배우로 성공한 뒤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공무원 채용 시험에 도전한 은영(김현주)과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면서 끝났다. “세상인심이 참 훈훈한” 덕분에 “영훈씨처럼 착하게 살아야 복을 받는다”는 해피엔딩이 진부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여느 드라마와 달리 아쉬움이 더욱 큰 까닭은 <백만장자와 결혼하기>가 남다른 길을 가려 했기 때문이다. 신데렐라와 재벌 2세, 출생의 비밀, 불치병 등 싸구려 드라마 공식을 차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힘있었다. 이런 고민으로부터 신데렐라 비틀기를 시도하겠다는 것은 드라마 소재 덕에 믿음직했다.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는 같은 이름의 리얼리티 쇼를 차용해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현대 문명을 가장 잘 반영한다는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메타비판까지도 의도했다고 볼 수 있다. 리얼리티 쇼를 통해 시청자들의 적정한 거리두기를 노렸다. 판타지를 품는 주체가 극중 인물인 탓에 시청자들은 전지적 시점에서 극에 빠져들기보다는 비판적 시각을 갖기 쉽도록 하는 장치가 사용됐다.

그러나 애초의 의도는 초중반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드라마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요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한 탓이다. 네 남녀의 감정의 엇갈림은 세밀하게 묘사되지 못했고, 내러티브의 흐름은 밋밋하고 구조는 헐거웠다. 이야기를 꺼내놓고 이를 시원하게 풀어내는 재미는 턱없이 부족했으며, 캐릭터는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하며 불분명해졌다. 주역들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이 엮어가는 이야기들도 줄기를 받쳐줄 만큼 탄탄하지 못했다. 결국 인물의 생생함과 극적 완성도라는 기본적인 요건들이, 제작 현장에 그때그때 공수되는 쪽대본에 구현되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기획의도를 뚝심있게 밀고 나가지 못한 점에서 연출력의 부재도 아쉬운 부분이다. 무엇보다 드라마와 시청자 사이에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크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은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 혼돈을 겪었을 법하다. 판타지에 온전히 빠져들어 현실을 잊을 수도 없었으며, 현실을 바탕으로 현대 문명이 오도한 환상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갖추기에도 역부족이었다.

마지막회에서 영훈의 아버지(박근형)가 아들에게 화분을 가리키며 “실수로 큰 가지 하나를 부러뜨렸는데, 나무가 큰 가지를 잃고 나서 온 힘을 다른 가지에 쏟아 잃어버린 가지의 빈자리를 채워줬다”고 한 말은 <백만장자와 결혼하기>가 놓쳐버린 것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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