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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아직도 그곳에
2001-08-10

편집장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되던 때가 기억난다. 매맞는 남편도 많다고 농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대부분 남자였다. 그들은 농담으로 진심을 가장했던 것이다. 묵은 신문을 뒤져보면 아마, 그 즈음해서 매맞는 남편에 관한 기사들이 심심치않게 발견될 것이다. 세태가 이런 데 매맞는 여자들만 편들다니 섭섭 또는 고약하다는 심사를 환기시키는, 맞불효과 비슷한 것을 일시적으로 내기도 했다. 남자가 매맞는 데 찬성하지는 않지만, 두 현상을 그런 방식으로 섞는 데는 더욱 찬성할 수 없었다. 비슷한 분위기는 성희롱 방지법 때도 되풀이됐다.

공격적인 여주인공과 수동적인 남자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올여름 <친구>의 흥행바톤을 이어 받았다. 어디서나 맘에 안드는 사람들에게 시비걸고, 정신을 놓칠 정도로 술을 마시고, 토사물을 토해놓는 전지현을 차태현도, 관객들도 사랑스럽다 한다. 그렇다고 전통적 여성관과 남녀관계가 바뀌었다고 환호할 수준은 아직 아니다. 천방지축 날뛰는 듯 하지만, 엽기적인 그녀는 희망없는 남자친구를 만나지 말라는 부모의 말에 순종할 줄도 알고, 순결의 이데올로기를 섬길 줄도 안다. 무성하게 소문이 들려오는 <나를 강간해> 따위의 프랑스 영화는 말할 것 없고, <노랑머리> 시리즈의 여자들보다 훨씬 안전하다. 그러니까, 관객들이 그녀의 엽기에 호감을 느낀다해서 우리사회의 여성관이 바뀌었다고 지레 짐작할 일은 아니다.

핵가족 시대가 번져가던 60, 70년대에도 비슷한 그 여자, 그 남자가 강조됐었다. ‘여성상위시대’라는 그 시대의 유행어에는 변화하는 남녀관계에 저항하는 남자들의 불안이 스며 있었다. ‘매맞는 남성’을 강조하던 최근의 전략과 맥락이 비슷하다. 오늘의 엽기적인 그녀는 그때의 그녀와 달라보이지만, 결국 돌아가는 곳은 비슷하다. 스타일이 바뀐 전통적 가치관. 자기안의 여성성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남자주인공 견우가 그래도 새로운 건가. 하긴 안전지대의 ‘엽기’가 그리 두려울 일도 없다.

영화 한편이 모든 세상을 짊어지는 건 아니다. 그래도 강인한 듯한 N세대 여자가 귀엽게 좌충우돌 하는 동안, 텔레비전의 현장중계 화면 속에서 매맞던 아내는 고층 아파트 창문으로 떨어져 내린다. 순수한 동화의 외장으로 지켜낸 영화의 순결 이데올로기는, 영화밖의 여자들을 지난 시대에 묶어두는 밧줄이 되는 건 아닐까. 너무 비현실적으로 앙징맞아서 끊어져 버릴 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