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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식 동양화 화첩, <게이샤의 추억>
김도훈 2006-02-01

황진이를 창부라고 부르는 것이 못내 아쉽다면, 그것은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고 한수 읊을 줄 알았던 그이의 기예와 자긍심 때문이다. 전통적인 게이샤(예자/藝者) 역시 기생과 마찬가지로 기예를 긍지삼아 살아가던 여인들이었다. 높은 값에 처녀성을 경매하고 권세가들 옆에서 웃음을 팔고 살았을지언정 그들은 당대의 예술가라는 자의식을 안고 살았다. <게이샤의 추억>은 그처럼 몸과 예술을 하나로 엮어 팔았던 어느 게이샤의 회고록이다. 소녀 치요(오고 스즈카)는 가난 때문에 교토의 게이샤촌으로 팔려간다. 당대 최고의 게이샤 하츠모모(공리)의 미움을 사서 하녀로 전락한 치요는 우연히 만난 회장(와타나베 겐)에게 연정을 품고, 하츠모모의 라이벌인 마메하(양자경)의 도움을 받아 사유리(장쯔이)라는 이름의 게이샤로 거듭난다.

실제 게이샤의 회고담을 토대로 한 원작을 영화화했다지만 <게이샤의 추억>은 일본 문화의 속살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데 사로잡혀 있지는 않다. 다국적 캐스팅과 할리우드 자본으로 창조된 이 ‘기온의 자매’에서 롱테이크 속에 한숨을 담아낸 미조구치 겐지의 숨결을 기대하는 것도 곤란한 일일 것이다. 대신 제작진은 LA 근교에 거대한 교토의 기온(게이샤 거주지)을 상상으로 재현했고, 그 상상의 장소에서 롭 마셜은 비천한 현실과 쇼비즈니스의 환상을 교환했던 <시카고>의 여인들처럼 게이샤의 삶을 그려낸다. 물론 미국인의 책을 미국인의 눈으로 재해석한 <게이샤의 추억>은 태생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의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영화다. 하지만 너무도 비싸고 은밀해 일본인조차 알지 못했던 게이샤의 세계는 원래부터가 잡히지 않는 환영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의상감독 콜린 앳우드가 전통에 구애받지 않고 만들어낸 화려한 기모노처럼, <게이샤의 추억>은 역사를 재현하는 대신 환상으로 치환해낸다. 그래서 이 할리우드식 동양화 화첩의 사치스럽고 얇고 가벼운 즐거움은 심장보다는 오감을 더욱 쾌락적으로 자극한다.

걱정과 달리 기본기가 튼튼한 중국인 배우들의 영어- 게이샤 연기는 받아들이기 수월하다. 그중에서도 화룡점정은 역시 ‘기온의 디바’ 하츠모모를 연기한 공리다. 등장하는 장면마다 주인공의 몫을 모조리 앗아가는 이 무시무시한 여배우는 전미비평가협회로부터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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