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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아쉽지 않아서 아쉬워
이다혜 2006-02-03

클릭 한번으로 영화 예매가 되고, 극장에서 보는 것과 (화면 크기 빼고는) 별 차이없는 음질과 화질의 DVD가 널린 세상에 산다는 일은 큰 복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왔다. 비디오 아이팟이면 드라마도 다운받아 보는 세상인데. 편하다. 너무 편하다. 그래서 가끔은 영화가 아쉽지 않다. 극장에서 못 본 영화는 DVD 출시를 기다리면 되고, DVD 살 돈이 없으면 대여점에서 빌리든가 케이블TV에서 방송해주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 영화가 이렇게 아쉽지 않다는 게, 나는 가끔 너무 아쉽다.

정말 10년 전만 해도 영화 보기가 이렇게 쉽지는 않았다. 영화 정보를 얻기는 더더욱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내가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멋진’ 영화 정보는 <한겨레>에 매주 금요일마다 연재되던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의 글이었다. 대학 근처에 살았던 나는, <한겨레>가 다 팔리기 전에 신문 가판대로 가기 위해 점심시간이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 학교를 빠져나왔다. 신문을 사서 기사 스크랩을 했고,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녹음해 친구들과 돌려 들었다. 기사에 난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보기 위해 공부는 내팽개치고 1시간 동안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향했고, 조조 할인으로 표를 산 뒤 상영시간까지 영화 팸플릿을 정성들여 읽었다(그러고도 영화의 내용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정은임의 영화음악>에서 소개한 <맨하탄 살인사건>을 AFKN에서 한다기에 열심히 보다가, 우디 앨런의 수다를 거의 놓쳐서 나는 거대한 미스터리와 함께 오도카니 밤을 새우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이 쓴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비디오드롬>을 읽고는 <밀러스 크로싱>과 더욱 큰 사랑에 빠져 비디오가 닳도록 다시 보기도 했다. 영화도, 영화에 대한 글도 다 귀했다. 극장은 언제나 버스를 타도 기본 20∼30분 거리에 있었고, 특이한 영화라도 볼라치면 시내 중심가까지 진출해야 했다. 영화를 본다는 일은 언제나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경험이었다. 며칠을 계획하고, 몇 시간을 들여야만 가능한.

그렇다고 명작만 봤을 리는 없다. 내가 중학교에 갓 들어갔을 때, <더티 댄싱>은 당대 최고의 ‘야한 비디오’로 알려져 있었다. ‘요즘 청소년’이라면 DVD를 주문해서 볼 수도 있고,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볼 수도 있겠지만, 미개한 시절에 살던 나와 친구들은 그런 호사를 누리지 못했다. 누군가가 언니 옷을 입고 귀밑 3cm 단발이 마치 우연인 시늉을 하고 비디오 가게에 들어가서 “다 알고 있다”는 주인 아저씨의 눈초리를 감내한 뒤에야 우리는 비디오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게 끝이면 좋겠지만, 비디오 플레이어가 집에 있으며, ‘야한 비디오 시청의 역사적인 날’에 요행히 집이 비는 친구를 수배해야 했다. 별 노출도 없고 죽어라 춤만 추는 그 영화를, 시종일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십대 계집아이 네댓명이 모여서 봤다. 순수의 시대를 살던 우리는, 영화를 보고도 뭐가 야한지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두근거림은 오로지 ‘발각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영화 때문에 무릅썼던 그 모든 수고가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건, 다 지난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몹시 그립다. 이성 관계에서 늘 그렇듯 ‘쉬운’ 건 아무래도 재미가 좀 떨어진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