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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들이 사랑한 팝의 여신, <카일리 미노그-쇼걸>
김도훈 2006-02-03

영국인들에게 팝의 여신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마돈나라는 대답을 듣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단신의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여가수 카일리 미노그야말로 브리튼 섬이 지난 20여년간 숭배해온 여신이기 때문이다. 브리티시 인베이젼(British Invasion)에 인색한 미국을 제외한다면, 이미 카일리 미노그라는 이름은 팝계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그러나 카일리가 언제나 신전의 꼭대기에 고고히 앉아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8년 <Locomotion>을 전세계적으로 히트시키며 80년대 팝의 공주가 되었던 그는, 90년대 내내 실패를 거듭하며 <스트리트 파이터> 따위의 영화에서나 모습을 드러냈다. 카일리가 다시 신전에 오른 것은 2000년에 발표한 재기싱글 <Spinning around>에 이어 전세계를 “라! 라! 라!”의 광풍으로 몰고 간 <Can’t get you out of my head>의 성공 덕분이다.

<카일리 미노그-쇼걸>은 지난 2005년 ‘그레이티스트 히트 투어’의 일환으로 열린 카일리의 런던 얼스코트 아레나의 콘서트를 담고 있다. 일곱개의 챕터로 나뉜 DVD는 데뷔곡 <I should be so lucky>로부터, 카일리 최고의 명곡으로 불리는 <Better the devil you know> 같은 중기 싱글들을 거쳐, 21세기 댄스팝계의 송가인 <Can’t get you out of my head>까지. 카일리가 부르는 클래식 히트곡들을 빠짐없이 담고 있다. 물론 카일리의 오랜 팬들이라면 <Got to be certain>이나 <step back in time> 같은 곡들의 부재를 조금 슬퍼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은빛 달을 타고 나타나 쥬디 갈란드의 <Over the rainbow>을 부르거나, 잊혀졌던 오랜 히트곡들(<Put your hands on your heart> <Je Ne Sais Pas Pourquoi>)을 새롭게 편곡해서 부르는 카일리의 모습은 충분한 보상이 되고도 남는다.

신격모독의 두려움을 안고서 솔직히 말하자면, 카일리 미노그의 무대는 또다른 여신 마돈나의 공연처럼 역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내지는 않는다. 카일리는 방송무대에서와 달리 체력 소모가 심한 콘서트장에서는 동작이 자잘한 안무에 주력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걸 대체하는 것은 100억원을 들여 완성한 무대의 경이로움과 콘서트를 열기로 휩쓰는 관객의 캠피(Campy)한 에너지다. 물론 보는이의 취향에 따라서는 국내에서 먼저 출시된 <카일리 미노그 : 라이브 인 시드니>나 <카일리 미노그 : 피버 2002 - 라이브 인 맨체스터>를 선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카일리 미노그 - 쇼걸>처럼 카일리의 지난 역사를 모두 아우르는 라이브 DVD는 일찌기 없었다. 물론 많은 팬들은 카일리의 뮤직비디오 모음집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때까지는 <카일리 미노그-쇼걸>이 팬들의 경전 노릇을 톡톡히 해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