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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패러디의 한계, <흡혈형사 나도열>
권민성 2006-02-07

<흡혈형사 나도열>의 나도열(김수로)은 ‘짬뽕’ 슈퍼 히어로다. 각종 ‘맨’과 드라큘라가 사생아를 낳으면 나도열이 탄생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그에게선 여러 영웅의 냄새가 풍긴다(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기획 단계부터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 맨> <엑스맨>처럼 초능력을 가진 한국형 히어로 시리즈물 탄생을 위한 것이었다). 스파이더 맨이 슈퍼 거미에 물렸듯, 나도열도 DHL 항공기를 타고 멀리 트란실바니아의 고성에서 날아온 흡혈 모기에 물려 괴력을 얻는다. 슈퍼맨이 밤과 낮에 이중생활을 해야 하는 운명이듯, 나도열도 미명 뒤에 숨어야 하는 박쥐의 운명을 따른다. 또 배트맨이 악당 조커와 맞섰듯 나도열 역시 스크린 경마장의 악덕업주 탁문수(손병호)를 상대로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친다.

그렇지만 100% 한국형 히어로를 표방하는 나도열은 그 ‘맨’들과 다르다. 저들이 미국적 정의를 수호하는 비장하고 엄숙한 영웅이라면, 나도열은 ‘꼴리면’(흥분하면) 흡혈 장사로 변하는 코믹한 영웅이다. 그는 사랑하는 연희(조여정)와 한 핏줄 같은 강 형사(천호진)를 위해서 악당을 몰아내고 정의를 지켜야 하는 임무를 지녔다. 하지만 그의 비장한 각오는 악당인 사거리파에 쫓기면서도 야동 DMB로 에로물을 보아가며 슈퍼 파워를 내야만 하는 그의 현실과 대조됨으로써 웃음을 자아낸다. 가벼움은 기존의 히어로 영웅의 아우라를 무너뜨리는 미덕을 낳는다. 생애 최초의 주연을 맡은 김수로는 다른 사람을 떠올리기 힘들 만큼 적역이었다. 그는 붉은 컬러 렌즈와 송곳니를 끼고, 목에 핏대를 세운 채,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가며 최고의 원맨쇼를 보여준다. 동료 형사한테 했던 “일할 땐 오버하고 그런 거야. 넌 왜 머리 깎은 뒤 파이팅이 없어졌냐?” 등의 애드리브는 압권이다.

그러나 기묘한 설정의 이 영화는 히어로 패러디의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나도열과 대적 관계에 있는 악역 탁문수를 보자. 두목의 배신 때문에 염산통에 빠진 뒤 얼굴이 망가져 악당이 된 조커에 비하자면, 탁문수의 캐릭터는 너무 단순하다. 그는 비정상적인 여성성을 띠고 있으나 그것이 그의 잔악무도한 행위를 이해시키는 데까지 미치진 못한다. 한편 뱀파이어 헌터 비오 신부(오광록)는 정체성이 불분명해 보인다. 나도열에게 원한을 풀기보다 인간이 될 것을 바라는 그는 스승의 모습에 가깝지만, 그의 조언은 제자 나도열의 ‘17 대 1’ 발차기 액션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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