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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를 위한 맞춤형 판타지, <그 여자>

<그 여자>의 매력 포인트

아줌마에게도 판타지는 있다. 1. 잘생기고 인기 짱인 연하남이 “이런 감정 처음”이라며, 죽자 사자 쫓아다닌다. 2. 남편과 바람난 여자한테, 그 여자가 죽자 사자해서 결혼한 뒤, 그 남편과 바람나 ‘너도 좀 당해봐’로 복수한다. (얼마나 통쾌할까?) 3. 그냥저냥 남편과 ‘호적과 자식이 웬수입네’ 하며 사는데, 헤어진 첫사랑이 100배 업그레이드된(외모로 보나, 재력으로 보나) 상태로 나타나, “아직도 너만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4. 10년간 찌개국물로 흥건한 가스레인지나 화장실 변기 닦는 기술만 프로가 된 골수 아줌마가, 근사하게 다시 ‘비즈니스’ 시장에 진입, 심지어 성공 가도를 달린다. (누가 날더러 썩어문드러진 아줌마래?)

<그 여자>엔 이 모든 게 들어 있다. 시간도 딱 금요일 밤, 열받는 밤이다. 남편이란 작자는 어디서 술을 퍼먹는지 모르게 금요일 밤을 즐길 때 혹은 소파에 드러누워 코를 골 때, 애들을 제 방으로 내치고 홀연히 ‘나 홀로’ 남은 아줌마는 TV를 켠다. 거기엔 아줌마가 꿈에 그리는 아파트가 아니라 꿈에 그리는 아줌마, 아니 ‘여자’가 있다.

악다구니치는 주책바가지 아줌마가 아니라, 눈물을 주르륵 흘릴 줄 아는 18살 소녀 같은 여자다. ‘그 여자’는 남자의 코트에서 달랑거리는 단추를 보곤, “칠칠치 못하긴” 하고 혀를 끌끌 차는 아줌마가 아니라, 소싯적에나 하던 버전으로 슬며시 반짇고리를 꺼내어 꿰매줄 줄 아는 여자다. 바닷가에서 “아줌마, 회 싸게 해줄게”라고 누가 옷자락을 잡아끄는 아줌마가 아니라, 바바리코트를 휘날리며 바닷가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게 ‘청승’이 아니라 그림이 되는 여자다. 짝퉁 배용준 같이 생긴 남자가 짝퉁 <겨울연가>스러운 스타일로 눈물을 흘리며, 아줌마에게 절절한 사랑을 흘려도 ‘스텐드바 불륜’이 아니라 ‘사랑’이 되는 여자다. 남자와 허겁지겁 자동차 번호판을 나무 막대기로 가려놓는 러브호텔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촛불이 아롱거리는 근사하고 애틋한 키스를 나누는 여자다.

섹시한 20대 커리어우먼에게 눈이 뒤집혀 이혼을 외치고 나갔던 남편이, 꼴좋게 그 여자한테 차이고 돌아와 다시 “합치자”며 바짓가랑이 붙잡고 매달리는 여자다. 남편과 바람났던 잘난 여자가 반해 결혼할 만치 더 잘난 남자가 자기더러, “내가 먼저 반한 여자는 당신뿐이란 말이에요”라며 애절한 ‘러브’를 불태우게 만드는 여자다. 보는 아줌마, 자기도 모르게 소곤거린다. 오오, 하늘이시여. 내가 심혜진으로 변신한 게 풀리지 않게 해주옵소서.

<그 여자>는 아줌마 버전 <겨울연가>요, 아줌마를 위한 맞춤형 판타지, 특 전복세트다. 먹을 땐 좋았는데, 먹고 난 뒷맛이 허전해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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