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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몰입력, 과유불급의 경지로다, <궁>
강명석 2006-02-16

드라마 <궁>의 설정이 설득력 있는 이유

<궁>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 잘생겨서, 집안이 좋아서, 심지어 싸가지도 없어서? 그 남자를 알지 않아도 된다. 그는 이미 ‘평범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했고, 나는 그 사람과 꿈같은 사랑만 하면 된다. 그래서 트렌드 드라마는 좀처럼 ‘왜’ 사랑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이미 그들은 사랑하기로 결정됐고, 중요한건 ‘이유’가 아니라 ‘몰입’이다.

MBC <>의 두 소년/소녀도 처음엔 서로의 ‘조건’ 때문에 만난다. 모든 걸 다 가진 황태자 신(주지훈)은 채경(윤은혜)의 빚을 갚아줄 수 있고, 평범한 채경은 좀더 많은 자유를 원하는 신에게 ‘재미있는 장난감’이 된다. 그러나 <>은 그들의 조건 뒤에 가려진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채경의 눈에 화려하게만 보였던 ‘궁’은 옷 입는 것 하나까지 격식을 따라야 하는 곳이었고, 평생을 그곳에서 산 신은 ‘어마마마’를 ‘엄마’라 부르지 못하고 살았다. 반면 철없는 소녀로만 알았던 채경은 평범한 가정의 딸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정으로 궁궐 안의 사람에게 다가선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발견’하기 시작한다. 소녀는 소년의 오똑한 콧날을, 안기고 싶은 ‘등짝’을. 소년은 아무리 밀어내도 다가오는 소녀의 활발함을. 그래서 신은 어느덧 채경의 궁 생활을 돕고, 채경은 소리가 나오지도 않는 이어폰을 끼고 사람들을 차단하는 신에게 다가가 그의 마음을 위로한다. <>에서 사랑은 ‘조건’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 조건 때문에 잃어야 했던 것들, 그리고 나와 다른 조건을 가진 상대방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품위를 위해 맨발로는 걸어다닐 수조차 없는 궁. 카메라마저 차분하게 그들을 ‘관찰’하여 은은한 실내악만이 허용될 것 같은 그곳에서, 맨발과 댄스 음악이 어울리는 소년/소녀가 빚어내는 차분한 파열음. 즉, <>의 소년/소녀의 사랑은 ‘조건’에 따른 ‘운명’이 아니라, 고립된 공간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소통할 수 있는 상대방에 대한 ‘의존’이다. 운명적인 사랑이 어딘가 있을지라도, 지금의 내 손을 잡아줄 사람은 그뿐이다.

<>은 그렇게 서로에게 의존하는 소년/소녀의 감성과 거대한 궁의 세계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우아한 긴장감을 빚어낼 때 최고의 매력을 발산한다. 정말로, 소년/소녀의 사랑은 그렇지 않은가. 신의 말대로, 꼭 마음이 없어도 가까이 있다 보면 끌리게 되는. <>은 그 현실적이지만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던 감정의 흐름을, ‘궁’이라는 공간의 분위기를 통해 우아하게 담아낸다. 이는 드라마 속 황실의 가훈처럼, 10대 소녀들을 열광시킨 인기 만화를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PD가 서로의 세계를 ‘과유불급’하며 얻어낸 새로운 경지다. <>이 마지막까지 그 ‘과유불급’의 세계를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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