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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의 로드무비, <돈 컴 노킹>

여기는 서부영화 촬영장이다. 한때 잘나갔던 서부영화 스타 하워드 스펜스(샘 셰퍼드). 그러나 그는 이제 한물간 퇴물일 뿐이다. 마약과 술과 복잡한 여자 관계 탓에 낙인 찍혀 영광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던 어느 날, 하워드는 촬영 도중 갑자기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버린다. 그러고나서 그가 찾아가는 곳은 고향이다. 거기에는 홀로 살아가는 어머니가 있다.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 하워드는 고향에서도 도박하고, 술 마시고, 싸우다 유치장 신세를 진다. 술이 덜 깬 채 새벽녘에 경찰에 인도되어 어머니 집에 돌아온 하워드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자신에게 10대 아들이 있다는 것. 하워드는 옛 연인과 아들이 사는 몬태나로 떠난다.

빔 벤더스의 로드무비

<돈 컴 노킹>의 감독 빔 벤더스를 로드무비의 제왕이라고들 한다. 로드무비, 말 그대로 길 위의 영화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대체로 뭔가를 찾으려고 떠난다. 그건 자아가 될 수도 있고, 이상적인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 또 아무것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들은 길을 나선다. 로드무비의 제왕 빔 벤더스는 길 위에서 생각하고, 질문하는 주인공을 통해 많은 걸 말해왔다. 이번에 빔 벤더스가 찾고자 하는 것은 가족의 소중함이다. 있는지도 몰랐던 아들이다. 이 영화는 최근 개봉했던 <브로큰 플라워>에서 빌 머레이가 옛 연인과 아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브로큰 플라워>가 끝내 아리송한 질문을 남기고 끝난다면, <돈 컴 노킹>의 하워드는 아들만이 아니라 딸도 만난다! 아버지는 아들과 딸을 만나 새 인생을 시작할 기회를 얻고, 아들과 딸은 아버지를 위한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샘 셰퍼드

주인공 하워드 역을 맡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많이 늙긴 했지만 빔 벤더스의 로드무비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그리고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까지도 탔던 <파리, 텍사스>의 주인공이다. 황폐한 사막을 가로질러 가족에게 돌아오던 이상한 남자 트래비스, 그 역을 맡았던 배우가 바로 샘 셰퍼드다. 그가 이번에는 2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주인공 하워드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는 퇴물이 된 영화배우 하워드 역을 샘 셰퍼드는 훌륭하게 연기한다. 사실 샘 셰퍼드가 이 영화에서 연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년 전 <파리, 텍사스>의 각본을 썼듯이, 이번에도 빔 벤더스와 함께 각본을 썼다. 연기도 하고 각본도 쓰고, 이래저래 한 게 많다. <돈 컴 노킹>은 샘 셰퍼드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프로젝트다. 영화 속 아버지와 가족뿐만 아니라, 오래된 두 영화친구도 오랜만에 해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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