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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속깊은 동화, <안녕하세요 하느님>
강명석 2006-03-02

<안녕하세요 하느님>이 보여주는 성찰의 힘

“설령 하루가 실패작이라 해도 제2, 제3의 하루를 수술시켜서 성공하면 돼.” 어라? 이거 어디서 들어본 얘긴데. KBS <안녕하세요 하느님>에서 천재 의사 동재(이종혁)는 정신지체를 앓는 하루(유건)를 수술해 천재로 만든다. 동재를 지원한 허 원장(나영희)은 이를 빌미로 거액의 투자를 받으려 하고, 한편에선 하루의 수술에 대한 윤리 문제가 제기된다. 이는 줄기세포가 하나면 어떻고 세개면 어떻냐던 황우석 박사의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안녕하세요 하느님>의 풍자 대상은 황우석 박사가 아니다.

하루와 동재는 수술만 잘되면 모든 게 잘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자신이 언제 어느 때나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뿐이다. 천재가 된 하루가 바라본 세상은 의사가 이기심으로 인해 환자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고, 돈이면 뭐든지 다 된다고 말하는 곳이다. 세상 사람들은 하루가 바보일 때나 천재일 때나 ‘정상’ 취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루는 좌절한다. 세상이 뭐 이리 복잡하냐고. 동재도 마찬가지다. ‘하늘’병원의 의사인 그는 하루를 수술해 자신이 하루의 ‘하느님’이 됐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하루는 자신이 동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유로운 인간이라 주장하고, 동재는 자신이 좋아하는 은혜(김옥빈)의 마음도 잡지 못한다. 즉 <안녕하세요 하느님>의 풍자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줄기세포가 모든 걸 해결해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줄기세포의 유무에만 집착했다. 그러나 <안녕하세요 하느님>은 한발 더 나간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삶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 그런 작지만 의미있는 깨달음이 하루와 동재를 통해 마치 잠언처럼 시청자에게 전달될 때 <안녕하세요 하느님>은 다른 멜로드라마와 차별화된 매력을 갖는다. 이는 다분히 드라마를 통한 성찰에 가깝다.

물론 <안녕하세요 하느님>은 그 성찰을 깊은 철학의 영역으로까지 발전시키지는 못한다. 이 드라마의 바탕에는 은혜를 중심으로 한 삼각관계 로맨스가 깔려 있고, <안녕하세요 하느님>은 그것을 캐릭터의 성찰과 짜임새있게 연결하지 못한 채 구태의연하고 작위적인 사건에 의존해 진행한다. 하루의 지능이 다시 퇴화하면서 은혜에게 일부러 못되게 군다거나, 하루를 구하기 위해 동재가 뛰어들어 손을 쓰지 못한다든가 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가치일지도 모른다. 뻔하디 뻔한 삼각관계 드라마가 오히려 로맨스보다 더 재밌는 깨달음의 순간을 주고, 현재 우리가 고민해야 할 화두를 던진다는 건 그 자체로 신선한 즐거움이다. 어쩌면 <안녕하세요 하느님>은 대중적 성격의 드라마도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다룰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은 아닐까. 철학은 될 수 없어도 어른들을 위한 속깊은 동화는 될 수 있는 그런 드라마의 등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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