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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 되게 좋아하네, <하늘이시여>

시대착오적인 <하늘이시여>의 혈통제일주의

<하늘이시여>를 보는 이유는, 일단 그 시간에 볼 게 없어서다. 그 시간은 모든 방송들이 ‘뉴스’를 쏟아내는 시간이다. 이 뉴스를 보면 일어나는 증상은 “어머? 저런 일이? 새로운 걸 알았네?” 이게 아니다. “놀고 있네” 내지는 “저런 놈은 전자 팔찌가 아니라 전자 머리띠가 필요해” 하는 이런 극악한 생각만 새록새록 솟아난다. 그리하여 “하늘이시여, 뭐 하시나이까? 드라마 좀 그만 보시고 저런 것들 좀 챙겨가시죠?” 이러며 “하늘이시여”를 찾다가, 아예 <하늘이시여> 드라마를 보는 걸로 마음의 정리를 끝낸다.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하늘이시여’를 부르짖게 큰 키와 하늘을 찌를 듯이 높디높은 코가 주는 압박까지 감수하면서.

그런데 누가 TV를 바보상자라고 그랬나? 이 TV가 바보도 별별 생각을 다 하게 만든다. <하늘이시여>를 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모락모락 든다. “역시 핏줄이 최고야.” “피 한 방울 안 섞였으니 저러지?” “역시 핏줄은 알아보는구나.” 그리고 화들짝 놀라며 드는 생각은 이거다. 이 드라마, 핏줄 되게 좋아하네?

<하늘이시여>는 결국 ‘하늘’이 내려준 ‘핏줄’에 대한 용비어천가다. 대한민국 한편에선 ‘줄기세포’에 목숨 건다면, 다른 쪽에 선 이 드라마는 ‘핏줄’에 목숨 건다. 지영선이 자경에게 무조건 목숨 걸고 잘하는 것도 실은 제 딸이니까 그런 거고, 자경의 친아버지인 임채무네 모자가 자경을 애타게 찾는 것도 다 실은 제 핏줄이니까 그런 거다. 자경의 계모가 자경을 그리 구박하는 것도 실은 다 제 핏줄이 아니니까 그런 거고, 역시 별 볼일 없는 문옥이 이 시대 별(스타)인 청하네 집에 들어가 떡하니 버틸 수 있는 것도 청하의 핏줄인 애를 뱃속에 갖고 있어서다. 아예 대사까지 있다. 이 결혼에 죽자사자 반대하던 시어머니 왕마리아 여사가 한혜숙이 연기한 영선에게 그러신다. “왕모가 네 친아들이었어도 자경과 결혼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겠니?” 기른 정 그딴 거 없고, 핏줄이 모든 걸 결정한단 소리시다. 핏줄이 핏줄을 알아보는 거니, 정녕 사람 얼굴에 달린 눈과 귀와 심장은 장식용이시란 말씀?

결국 이 드라마가 널리 세상에 퍼뜨리는 복음은 이거다. 하늘이 내려준 핏줄을 넘어서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 작가가 <왕꽃 선녀님>때 입양한 주인공더러 ‘개구멍받이’ 운운한 대사를 날린 것도 다 한 핏줄이다. 이러니 아이를 입양한 부모나 아이를 데리고 재혼한 부부들은 이 드라마를 보자면 아예 속이 쓰리다 못해 쓰러지겠다. 이러니 궁금하다. 피가 모자란 ‘빈혈’엔 작가 말대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쇠간이 즉효라면, 당최 이 작가의 핏줄에 대한 오버 앤 오버인 ‘과혈’엔 뭘 먹여야 즉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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