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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사에 잊혀지지 않은 스캔들, <굿 나잇 앤 굿 럭>
김현정 2006-03-14

1950년 상원의원 조 매카시는 미국 국무성 내에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화당의 지지를 얻은 그는 1954년까지 하원 반미활동조사위원회를 이끌며 숱한 정치가와 예술가, 시민들을 공산주의자로 고발했고 ‘매카시즘’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매카시는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무엇보다도, 미국에 공포를 퍼뜨렸다. 공산주의자로 몰릴까 두려웠던 사람들은 침묵했고 달아났고 다른 이를 붙잡아 함정으로 끌고 갔다. 엘리아 카잔이 동료 영화인들을 고발했듯이. <굿 나잇 앤 굿 럭>은 매카시의 권력이 절정에 달한 것처럼 보였을 그 무렵 침묵을 그치고 진실을 보도했던 언론인 에드워드 R. 머로와 그 동료들에 관한 영화다. 머로는 “역사를 부정할 수는 있겠지만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면서 공포의 시대에 제동을 걸기로 결심한다. 이 영화의 제목 ‘굿 나잇 앤 굿 럭’은 머로가 방송을 마치면서 건네곤 했던 인사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런던에서 전쟁뉴스를 보도해 명성을 떨쳤던 머로(데이비드 스트라던)는 <CBS>에서 시사 프로그램 <시 잇 나우>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프로듀서 프레드 프렌들리(조지 클루니)에게 지방신문에서 읽은 뉴스를 프로그램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 신문은 공군 마일로 라둘로비치가 재판도 없이 전역당했고 공산주의자로 추정되는 아버지와 누이를 고발하라는 강압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그 순간까지 <시 잇 나우>는 논평을 하지 않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머로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제작을 강행하고, 한발 나아가 매카시 의원을 공격하는 프로그램까지 제작하기로 한다.

감독과 공동각본을 맡은 조지 클루니는 머로가 라둘로비치 사건을 보도했던 순간이 미국 언론사의 3대 사건 중 하나라고 믿어왔다. 머로는 그와 그 아버지의 영웅이었다. 지방 방송국 앵커의 아들이었던 클루니는 어머니가 없을 때면 뉴스 스튜디오에서 놀았고, 뉴스 제작팀이 <굿 나잇 앤 굿 럭>의 머로팀처럼 소리치고 토론하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굿 나잇 앤 굿 럭>은 TV 뉴스쇼의 아버지와도 같은 저명한 언론인과 함께 뉴스쇼가 만들어지는 스튜디오 자체에도 매혹을 느끼는 영화가 되었다. 머로가 매카시를 고발한 건 1954년이었다. 그 시절을 다큐멘터리처럼 담은 <굿 나잇 앤 굿 럭>은 작은 방에서 줄담배를 피우며 정치적 사건의 의미를 논하고 방송이 끝난 뒤에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둔 채 스카치를 마시며 자축하는 언론인들의 로맨틱한 한때를 보여준다. 거기엔 어느 정도 향수가 어려 있다. 그들은 대중의 편견이 아니라 거대한 음모와 맞서싸웠다. 두려운가, 스스로 자문해야 했던 이들. 감독 조지 클루니의 카메라는 스튜디오와 회의실과 술집을 능란하게 오가면서 TV 뉴스쇼가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시대, 언론인들의 에너지를 타고 흐른다. <굿 나잇 앤 굿 럭>을 보는 지금의 언론인이라면, 혁명이 사라진 시대를 애석해하는 90년대 사회주의자들처럼, 몸을 던질 만한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게 될지도 모른다.

<굿 나잇 앤 굿 럭>은 독일 군대의 공습과 매카시의 반격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머로를 용기있는 언론인이라고 찬미한다. 그 바탕에 깔려 있는 믿음은 사람은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머로와 함께 일했던 기자 조(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실제 모델은 “내가 아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건 머로가 주었던 교훈이었다. 누구도 두려워해선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굿 나잇 앤 굿 럭>은 언뜻 무모하게까지 보이는 이 전제 아래에서 언론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미묘한 문제를 발견한다. 머로가 처음 부딪친 벽은 <시 잇 나우>는 논평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오직 사실만을 보도해야 하는가, 논점이 개입되지 않은 사실이 가능하기는 한가. 머로와 <시 잇 나우>는 기자라는 직업이 생긴 이래 수많은 이들이 던졌을 법한 질문을 되풀이하고, 매카시의 발언과 기록화면만을 사용하여 그 모순을 폭로함으로써 돌파구를 찾아냈다. “뉴스맨을 이겨보겠다 이거지?” 자신만만한 머로는 정교한 화술을 사용하여 공격지점을 잘못 찾은 매카시의 반론방송을 무화하고, 스튜디오의 영웅이 된다. 슬프게도 <시 잇 나우>은 1958년 폐지되고 만다. 공화당의 정치적인 압력이 아니라 저조한 시청률과 그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제작비가 원인이었다.

학생운동을 하기는 했지만 마르크시즘은 부정했던 자유주의자 머로는 자본의 압력에 굴복하여 <시 잇 나우>가 일요일 오후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런데도 머로는 자신이 살고 있는 미국 자체에 의문을 던지지 않았고, 조지 클루니와 <굿 나잇 앤 굿 럭> 또한 마찬가지다. <시 잇 나우>는 재판도 하지 않고 전역당한 군인과 증거도 확인받지 못한 채 공산당원이자 스파이로 몰린 흑인여성을 옹호하여 매카시를 무고죄로 고발했다. 그렇다면 무고가 아니었던 이들은, 정말 공산당원이었기 때문에 투옥되거나 추방당했던 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였던 것일까. <CBS> 사장 페일리는 프로그램 폐지에 항의하는 머로에게 앨거 히스가 간첩혐의를 받았을 때는 왜 침묵했는지, 머로 또한 공산주의자로 오해받을까봐 자기 검열을 한 것은 아닌지, 비난한다. 그러나 문제는 머로가 자기 검열을 했다는 것이 아닐 것이다. <굿 나잇 앤 굿 럭>은 공포를 무기삼아 권력을 유지하는 이들이 지배했던 시대에 언론은 무엇을 했어야만 하는지 묻는 영화이고, 그 질문은 테러의 공포가 타국을 공격하는 수단이 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마땅히 동반됐어야 하는 질문은 피해간다. <굿 나잇 앤 굿 럭>은 진짜 공산주의자의 권리에 대해선 묻지 않기 때문에 매카시즘이 50년대 미국에서 작동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의 고리 하나를 빠뜨리고 말았다. 그것이 미국이 환호한 이 영화에 영국 좌파 언론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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