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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식 ‘뻔뻔한’ 본심, <뻔뻔한 딕 & 제인>

짐 캐리가 출연하는 코미디영화는 그가 출연하는 로맨스보다 선택이 편하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적어도 실컷 웃기는 하겠다는 모종의 믿음(혹은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짐 캐리가 제작에까지 참여한 <뻔뻔한 딕 & 제인>의 초반부는 이런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하다.

영화는 잘나가는 IT기업의 홍보담당자 딕(짐 캐리)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는 ‘기쁜’ 소식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의 회사는 공교롭게도 부사장 딕의 첫 출근날 부도를 맞고, 그는 거리로 내몰린다. 영화는 이제야 자신의 정체가 ‘짐 캐리표 코미디’임을 증명하기 시작한다. 멀끔한 양복을 벗은 짐 캐리는 온갖 잡다한 일들에 뛰어들고, 언제나 황당한 결말을 맞이한다. 할인마트에 출근했다 성추행범으로 몰리는가 하면, 아시아 노동자들의 일용직 시장에 갔다 이민국에 붙잡히는 등 짐 캐리 특유의 슬랩스틱에 바탕한 초반부의 소동은 그 자체로 충분히 재미있다.

그러나 영화는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심각해진다. 이는 <뻔뻔한 딕 & 제인>이 지난 2002년 미국에서 있었던 ‘엔론 스캔들’(엔론그룹이 맞이한 사상 초유의 부도로 수많은 실직자와 미국 초유의 경제위기를 겪었던 사건)이 모티브라는 점을 인지하고 나면 다소 이해가 된다. 아마도 감독은 웃으면서도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촌철살인의 코미디를 만들겠다고 결심했으리라.

결과적으로 ‘엔론 스캔들’은 <뻔뻔한 딕 & 제인>의 태생적 한계로 작용하고 말았다. 영화는 뭐를 해도 어설픈 딕과 제인이 은행을 털기 위해 벌이는 다소 ‘판타지한 시추에이션’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다른 실직자들이 은행을 털고, 불법 투견장을 열다 구속되는 ‘리얼한 시추에이션’이 대조되면서 오는 또 다른 재미를 보여주려 한 듯하지만, 이들 장면은 각자의 자리를 못 찾고 허공만 맴도는 역효과로 작용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강도로 분장해 ‘별다방’ 커피를 무전취식하고, 편의점에서 푼돈을 털며 즐거워했던 ‘뻔뻔한’ 딕과 제인이 ‘착한’ 딕과 제인이 되면서 일어난다. 이때부터 영화는 할리우드산 코미디의 전형적인 엔딩으로 가기 위한 ‘뻔뻔한’ 본심을 숨기지 않는다. 이는 극 초반 보여준 장점마저 갉아먹는 꼴이 돼버렸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쉬움은 짐 캐리와 테아 레오니의 빛나는 열연이 뻔한 결말과 함께 묻혔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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