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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의 자존심을 보여준다, <사랑과 야망>
강명석 2006-03-30

이 시대에 필요한 정신을 일깨우는 드라마 <사랑과 야망>

SBS <사랑과 야망>의 태준(조민기)의 가족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캐릭터들이다. 태준은 홍조(전노민)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지만 언제나 당당하고, 그의 어머니(정애리)는 파주댁(이경실)의 돈을 끌어다 쓰면서도 되레 그에게 큰소리를 친다. 또 태수(이훈)는 돈 한푼 없는 상황에서도 자기 집 재산을 훔쳐온 정자(추상미)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다리가 불편한 선희(이유리)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기 일을 가진다. 심지어 그들은 없는 살림에 정신이상자 명자(김나운)를 돌본다.

돈있는 사람에겐 당당하고 없는 사람에겐 동정을 베푸는 그들의 행동은 마치 가난하지만 품위있는 귀족을 연상시킨다. 돈보다 ‘자존심’과 ‘품위’가 중요하다. 돈을 좇는 인간들은 경멸의 대상이거나 악인이 된다. 세속적인 성공에만 집착하는 미자의 매니저(하유미)는 속물적으로 그려지고, 악덕 고리대금업자 동철(최준영)은 이 드라마의 유일한 악역이다. 하다못해 거리의 구두닦이도 그냥 주는 돈은 받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과 야망’이란 제목은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태준은 사랑과 야망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것이 자신의 자존심과 부딪치는 순간 그것들을 가차없이 포기한다. 그는 출세길을 보장하는 국회의원 비서직을 국회의원이 자신의 가치를 돈 100만원만큼도 봐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두고, 모두가 여자를 끼고 술을 마셔도 술집 여자가 따라주는 술 한잔을 거절한다. 그가 미자와 끊임없이 갈등하는 것도 미자에게 당당하고자 하는 그의 자존심 때문이다. 대체 왜 그렇게 사나 싶다. 하지만 그 지독한 자존심 때문에 명자는 보호받을 수 있다. 만약 태준의 어머니가 돈 때문에 명자를 성추행하는 손님을 놔두는 사람이라면 명자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 것인가. 여성성을 보호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며, 돈보다 정신적인 가치를 앞세우는 <사랑과 야망>의 세계관은 통속 드라마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꼿꼿하다. 그리고 명자가 원작에 없었던 캐릭터라는 점은 이 드라마의 지향점을 확실히 보여준다.

<사랑과 야망>은 그 시대를 재현하는 시대극이 아니라 이 시대에 필요한 정신을 보여주는 시대극이다. 1960년대가 그랬듯, 2000년대의 우리도 ‘사랑’과 ‘야망’에 대한 욕망을 넘어설 수 있는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허술한 세트와 소품, 부족한 배우들의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야망>의 리메이크가 존중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거의 모든 드라마가 재벌에 의한 신분상승을 당연하게 여기는 요즘, ‘서서 죽어도 무릎은 꿇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의 자존심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김수현 작가가 단지 통속 드라마의 흥행사가 아닌 거장이 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야 김수현 작가의 캐릭터들이 왜 그리 독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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