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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수집가 이용철 [1]

이 사람에 대한 소문은 꽤 오래전부터 들어 왔다. 많은 DVD 타이틀을 소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넘치는 영화애를 과시하면서 <씨네21>의 DVD 편집위원으로 글도 쓰고 있는 이용철씨. 게다가 알고 보면 그는 고전영화 관람 문화의 숨은 도우미이기도 하다. 영화와 수집의 욕망이 서로 만나 같이 하게 된 그의 특별한 인생사가 궁금했다. 그가 생각하는 영화 세상이란 어떤 것일까? 혹은 수집의 탑이란 어떤 모양일까? 히치콕처럼 한 발을 딛고 서서 또 하나의 타이틀을 기어이 머리 위에 추가하고 있는 이 사람, 이용철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보자.

수집가의 숙명에 관해 이미 오래전에 내려진 정의가 있다면 모으는 행위와 모은 그것으로 무얼 어떻게 얼마나 유용해야 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스스로가 광적인 고서적 수집가였던 독일의 비평가 발터 벤야민이 ‘수집에 관한 한 강연’에서 인용했던, 문학가이자 수집가 아나톨 프랑스의 짧은 일화. 어느 날 한 손님이 아나톨 프랑스의 놀랄 만한 서재를 보고는 물었다고 한다. “당신은 이 책을 모두 읽었습니까?” 그의 대답과 반문은 이거였다. “아닙니다. 십분의 일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혹시 당신은 매일같이 세브르 도자기(프랑스의 명품 도자기)로 식사를 합니까?”

수집가, 그리고 한국 영화 시청각 문화의 숨겨진 공로자

이용철. 그렇다면 이 사람은 이상한 수집가다. 처음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DVD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만 들었다. 까짓 그게 대수냐, 그렇게 생각할 뻔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영화 시사회를 막론하고 그를 자주 마주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삶이 초조해지는 태생적 영화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례로 요새 회사를 그만둔 차에 그가 하는 일이란 극장을 찾는 것인데, 지인들은 출몰하는 그를 보며 “영화 좀 가려서 보라고” 말할 정도다. 집에 쌓아놓은 DVD의 쓰임새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은 보지 않는 걸 모을 필요가 있냐는 주의다. 참고로 그에게는 셈하는 것이 힘들 정도의 DVD 타이틀이 있는데, 그래서 어느 정도 있냐고 물었더니 얼른 셈하지 못하고 한참을 생각하다 “대략 4천, 5천장”이라고 말한다(숫자로 치면 CD는 더 많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그는 한 가지 무시무시한 망상을 하곤 한다. “이건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라고 하면서 그가 털어놓는 말. “밤에 잘 때 무서워요. 제일 무섭게 본 게 일본영화 <비밀의 화원>인데, 왜 거기서 주인공이 쌓아놓은 탐사 장비 때문에 집이 무너지는 장면 있잖아요. 그게 공포감이 대단해요. 남들은 웃겠지만….” 그 공포감을 생산적으로 전환이라도 하겠다는 듯, 그는 ibuti라는 필명으로 <씨네21>의 DVD 지면에 짧지만 알찬 원고를 매주 쓰는 필자이기도 하다.

만약 여기에서 그쳤다면 주위에 그런 사람이 하나쯤 있다고 그냥 알고 넘어갈 일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수집가 일반에 대한 큰 오해가 아니라면 이런 말이 가능한데, 수집가란 소장 목록을 자랑스러워할 때는 있어도 누군가의 손에 선뜻 넘기지는 않는다. 왜 안 그렇겠나? 수집가에게 수집이란 사물과 교감하고 기억을 소유한다는 것인데 그걸 쉽게 남에게 나눠 주긴 힘들다. 달리 말하면 수집품은 인생의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고 얻은 것들일 테고, 그 수집품을 자랑스러워한다는 건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후회하지 않고 아낀다는 말이나 같은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게 정당한 거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암암리에 수집가의 그 지독한 명예율을 저버린다. 덕분에 한국의 영화 시청각 문화는 숨은 지원자 하나를 얻은 셈이다. 물론 “잘 알고 지내는 공적인 집단”에만 한해서지만, EBS나 시네마테크 등에서 참고 자료가 필요하거나, 프린트 지연으로 자막 작업을 손대지 못할 때 급하게 구조신호를 보내는 게 바로 이 사람이다. 90년대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시절 종종 열악한 화질로 영화상영을 하던 그때에 직접 자신의 DVD를 틀지 않겠냐고 제안한 이후, 인연은 지금까지 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그를 소개하고 싶다. 이 사람은 매일같이 세브르 도자기로 식사를 하는데,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모여 같이 만찬을 즐기도록 향연을 베푸는 정말 이상한 수집가다.

홈비디오 문화를 스승으로 모셔온 영화광

어머니는 빗속에서도 그를 업고 걸어서 먼 극장을 찾을 정도로 전형적인 60년대의 열성 관객이었다. 첫째 누나도 극장에 가기를 좋아했다. 게다가 셋째 누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이야기를 정말 잘했다. 유년 시절에는 첫째 누나를 따라 극장에 다녔고, 행여나 놓친 영화들이 있어도 셋째 누나의 구수한 입담은 그에게 상상의 환등을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스스로 영화를 보기 시작한 건 80년대 중반 이후”였다. “세르지오 레오네 때문이었어요. 그 사람 영화를 극장에서 본 순간… (긴 침묵) 태어나서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걸 느꼈어요. 정말 웃기게도 그 영화는 난도질당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였는데, 특정한 배우나 음악이 아니라 영화 전체가 나를 누르는 느낌이었어요. 그게 84년인가 85년이었어요. 그 뒤로 그 느낌을 더 받겠다고 영화를 보러 다녔어요.”

독특한 건 그 시절 한국의 영화광들이 으레 거치던 문화원 무용담이 이용철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셀프 메이드’라고 부르면서 아마도 그게 자신의 특이함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일반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는 영화까지 보고 싶다는 갈증은 “80년대 후반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말하자면 돈을 벌면서 커졌고, 영화에 대한 수집벽도 동시에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그래서 그에게 영화 스승은 홈비디오 문화다. 그때 VHS를 모으면서 “대부분의 유명감독들의 영화를 보게 됐고”, 요즘 그를 점점 더 깊은 생각으로 몰아가는 “피터 왓킨스 감독을 알게 된 것도 그때쯤”이다. DVD 타이틀을 처음 산 건 96년 말이나 97년 초였다. 왜 아니었겠냐마는 플레이어도 사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출장길에 덜컥 눈길을 사로잡혀 한 아름 들고 왔다. 그때 구입한 것이 <콘택트>나 <다크 시티>였다고 기억한다. 이런 일이 한두번은 아니니, “평생을 걸고 좋아하는 영화는 한 작품당 대여섯개 정도 되는 것들도 있고”, “오즈 야스지로 컬렉션은 몇백만원을 들여 구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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