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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수집가 이용철 [2]

영화제 아르바이트생에서 DVD 회사를 거쳐 그 다음으로

장 뤽 고다르 컬렉션

파엘&프레스버거 컬렉션

영화와 상관없는 직장을 10개쯤 옮기며 10년쯤 다녔을 때, “하이텔을 통해 영화쪽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고, 그만두면 안 되는 상황에서 그만둬버렸다”. “그때 생각은 오로지 아무거나 영화 일을 하면 좋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이미 나이는 30대 후반이었고, 급여 많은 대기업 직원으로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던 몸을 박봉으로 다스리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제작가협회에 말단으로 들어가봤지만 의견 차이로 며칠 만에 나왔고, 부산영화제 PPP 말단 아르바이트생으로 일주일 동안 있어봤지만 “나이 많은 아저씨가 떡하니 앉아 있어서” 마음대로 부리지도 못하는 십 몇년 차 나는 어린 상사들에게 미안하고 스스로도 힘들어 또한 나왔다. “제작이나 기획 일을 하기에는 그동안 상관없는 일을 너무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어 관리쪽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고는 시네마서비스의 아는 선배를 찾아갔더니 원하던 부서의 직원을 하루 전날 뽑은 뒤였다.

그때쯤, “그래, 내가 영화를 배운 건 홈비디오니까 그쪽을 통하면 가능하겠구나 생각”했다. “한국에서 DVD를 재미있게 하는 회사가 어디 있나 봤더니 스펙트럼이라는 회사가 있었다.” 스펙트럼에 막무가내로 편지를 썼다. 그런데 전화가 왔고, 과장이 됐고, 실장까지 했다. 로베르 브레송, 장 뤽 고다르, 마이클 파웰&에머릭 프레스버거, 장 비고 컬렉션 등 귀중한 타이틀들이 그가 일하던 시절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작품들이다. “한국의 보따리장수들이 하도 사기를 많이 쳐서 프랑스의 고몽이나 파테 같은 영화사는 처음 1년 동안은 미팅도 안 해주던” 그런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면서 얻은 소득들이었다. 그의 애정은 고다르 컬렉션이나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갱들>을 모두 그의 손으로 번역 감수하거나 직접 번역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회사를 그만둔 지금, 이용철의 계획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작은 가게를 동업해서 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미학과 대학원에 진학해볼까 하는 생각이다. 64년생, 그의 나이 올해 마흔셋이다. 평탄한 것 같지만 평탄하지 않았던 그의 인생이 다시 능선 앞에 섰다.

DVD보다는 VHS, VHS보다는 스크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용철은 몇년 전까지도 DVD와 VHS로 같은 영화가 있으면 VHS로 보는 걸 더 선호했다. “DVD는 넣으면 기계하고 보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기계적인 느낌이 싫었어요. 그런데 VHS는 돌아가는 순간 마치 필름이 돌아가는 것과 많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또 한편으로 그는 VHS보다 스크린을 더 선호한다. “될 수 있으면 스크린에서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편”이고,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법칙>처럼 스크린 맨 앞자리에서 볼 때만 진짜 봤다고 말할 만한 영화가 있는 법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예상과 달리 화려한 홈시어터 장비를 구비해놓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전문 리뷰어들은 내 욕을 많이 해요. 저 사람은 왜 화질에 대해서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씨네21>이나 내가 썼던 다른 지면을 읽는 사람들은 나하고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AV 만족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처럼 DVD를 보는데, 단지 그 사람들이 엉망인 제품을 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 정도인 거예요. 저는 테크놀로지를 좋아하지도 않고요, DVD를 사는 것도 기술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작품을 따라간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여기까지 듣고 나니, 적어도 그의 영화에 관한 수집은 최선이기보다 차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매일 낮밤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전과 새로운 영화들을 함께 모여 쉽게 볼 수 있는 극장이 직장과 집 안팎으로 도처에 즐비하고 또 즐비하다면 그의 수집은 어디로 나아갈지 그 순간 문득 궁금해졌다.

영화 이야기를 잘해주는 사람, 이용철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감독이나 전문 평론을 할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그는 “감독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고, 아무나 해서도 안 되는 것 같다”고 간명하게 일축했고, 미학을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근원적인 무언가를 채우는 자기만족의 차원이 더 강하다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다음날 그에게서 베스트 10 추천작과 함께 메일 한통이 왔다. 사적으로 받은 편지 내용을 허락도 받지 않고 공개하는 것이 미안할 따름이지만, 이것이 그가 미래에 걸고 있는 결심이고, 진심이기에 그 일부를 여기 올리는 것이 마지막 첨언으로 맞다는 생각이 든다.

“3년 전엔가, 장 두셰(<French New Wave> 등을 기술한 프랑스의 저명한 영화평론가- 편집자)가 한국에 왔을 때 누군가가 그에게 질문을 했어요. 두셰가 <카이에 뒤 시네마>에 DVD 리뷰를 쓰곤 할 때인데, 질문을 한 사람은 그가 왜 그런 사소한 일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거지요. 두셰의 대답은 간단했어요. 리뷰를 쓰고 번 돈으로 DVD를 사고 싶었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사석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외부로부터 독립된 자의 자유 그리고 순수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람들도 저에게 묻더라고요. 홈비디오 리뷰 같은 거 쓰면 뭐 하냐, 공부 좀더 해서 평론 같은 거 써야지, 라고요. 평론가 중에선 DVD 리뷰 쓰는 게 창피한 사람도 있나 보더라고요. 어제도 영화광 이야길하다가 말했다시피 전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홈비디오를 통해 누군지 모르는 다수의 사람과 영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는 기쁘거든요. 나중에도 그냥 그렇게 기억되는 사람이면 행복할 것 같아요. 영화 이야기를 잘해주던 사람, 뭐 그런 걸로요.” 그러고보니 이상한 수집가 이용철, 그를 희귀한 영화 글쟁이로 소개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이용철이 추천하는 필사의 DVD 베스트 10

DVD 왕수집가의 열가지 선택

“홈 비디오를 통해 누군지 모르는 다수의 사람과 영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쁘다”는 DVD 왕수집가 이용철씨. 그가 소장하고 있는 DVD 타이틀 중 베스트 10을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이용철이 추천하는 나의 DVD, 나의 영화, 그 진심의 추천작 10편을 소개한다. 이제부터는 찾아보는 것만 남았다.

<오즈 야스지로 컬렉션 Vol. 1∼4>(일본, 쇼치쿠, 34Disc) 오즈 야스지로냐 미조구치 겐지냐, 그것은 삶에 대한 질문의 시작과도 같다.

<홍상수 초기작 컬렉션>(한국, 스펙트럼디브이디, 3Disc) 세기말 한국의 낯선 기억을 찾아서.

<조아오 세자르 몬테이로 컬렉션>(프랑스, 피아스, 11Disc) 한 기인의 못다 이룬 천일야화. 루이스 브뉘엘도 자신의 이름을 빼고 몬테이로를 넣은 것을 용서하리라.

<알프레드 히치콕 유니버설 컬렉션>(한국, 유니버설, 14Disc) 모든 가정마다 한 세트씩!

<버스터 키튼 컬렉션>(미국, 키노, 11Disc) The Great Stone Face의 전설. 죽도록 웃거나 혹은 경배하거나.

<에릭 로메르 컬렉션>(영국, 애로우 필름스, 8Disc) 구애의 미학은 이렇게 완성된다.

<케스>(영국, MGM) 켄 로치가 다르덴 형제보다 좋은 이유.

<파리 코뮌, 1871>(프랑스, 도리안 필름) 내 정신을 깨우는 이름, 피터 왓킨스.

<발 루튼 컬렉션>(미국, 워너, 5Disc) B급 호러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업 시리즈>(미국, 퍼스트 런 피처, 5Disc) 죽을 때 가져가고 싶은 단 하나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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