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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 포 벤데타> 읽기 [2] - <매트릭스>와 이어지는 체제 비판

파시즘과 저항이라는 샴쌍둥이

<매트릭스> 시리즈의 워쇼스키 형제가 제작했다는 말에, 현란한 ‘액션’장면을 기대하고 영화관에 갔던 사람들은 <브이 포 벤데타>를 보며 내내 졸았다고 한다. <매트릭스>에 비해 영화의 시각효과는 현저히 줄었지만 정치적 메시지는 더욱 명확해졌다. 두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통제와 저항’이다. <매트릭스>가 기계지배 사회를 전복하려는 인간들의 게릴라전을 그리고 있다면, <브이 포 벤데타>는 3차대전 이후 2040년경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영국(정확히는 ‘잉글랜드’)의 파시스트 정부에 맞서는 전사·테러리스트의 투쟁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기존 체제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체제의 핵심 속으로 들어가서 그곳을 뒤엎어버리는 행위가 두 영화 모두를 아우르고 있다.

<브이 포 벤데타>의 얼개를 이루는 것은 파시스트 서틀러 정부에 맞선 브이의 대항전이다. 서틀러와 브이는 모두 기존의 역사적 코드들이 그대로 또는 변형되어 만들어졌다. 스크린을 통해서만 등장하는 당의장 서틀러(존 허트)는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의 ‘빅브러더’를 닮았고, 서틀러 정부의 통치방식은 히틀러의 나치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십자가를 변형시킨 상징의 동원,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똑 닮은 대중연설(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 의장의 지하벙커 생활, 방송매체 장악, 비밀경찰, 사회의 모순을 인종·종교 차별로 해소하는 정책 등이 그것이다. 이에 맞서는 V(휴고 위빙)는 서틀러의 집권음모에 희생될 뻔했으나 심한 화상과 함께 초인적인 능력을 획득한 뒤 복수(vendetta)를 기도한다. 서틀러가 빅브러더와 히틀러의 조합이라면, V의 캐릭터는 자신의 방에 쌓인 책과 골동품만큼이나 잡다한 문화적 코드들의 포스트모던적 결합이다. 그의 지능적 복수와 검술은 몬테 크리스토 백작에게서, 유려한 대사는 셰익스피어에게서, 마스크와 복장, 저항정신은 가이 포크스에게서, 테러의 방식은 제정 러시아 아나키스트들에게서, 민주주의 철학은 루소에게서, 폭발장면의 음악은 차이코프스키에게서, 사랑의 방식은 <오페라의 유령>에서 왔다.

영화는 시작부터 재판소의 폭파장면을 인상적으로 보여주며, 정확히 1년 뒤 국회의사당 파괴로 끝을 맺는다. 분명하게 정치적인 이 영화에서, 서틀러 정부가 어떻게 정권을 창출·유지하고, V가 어떻게 파시스트 정부와 1인 싸움을 해나가는지 지켜보는 것은 이 영화의 핵심이며 동시에 모든 것이기도 하다. 서틀러는, 히틀러가 국회의사당 화재를 일으켜 유대인에게 책임을 넘기듯, 혼란기에 바이러스를 만들어 아일랜드의 학교와 정수장 등에 살포하고 그 와중에 반대세력을 눌러 정권을 장악한다. 그의 정치적 결정은 언론인, 종교인, 정치인, 경찰, 지식인(과학자)과의 협잡을 통해 나온다(김지하 <오적>의 서틀러 버전). 이 이데올로기적·억압적 국가기구의 결합은 혼돈상태에 질서만을 원하는 다수 국민의 합법적 동의에 의해 나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에 대해 V는 먼저 재판소를 폭파함으로써 국민들의 이목을 끈 뒤 언론을 이용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오사마 빈 라덴의 V버전), 순응적 대중을 질타하며, 이후 행동을 예고하는 방식을 택한다. 혼란을 야기하면 정당하지 못한 정부는 무리수를 두게 되어 있고, 그 무리수를 지켜보며 국민은 기존 정부의 숨겨진 진실을 알아차린다. 이것은 유사 이래 모든 급진적 반란자들이 공유했던 생각이자 V의 계획이다. 물론 V가 야기한 혼란을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계획은 성공할 수 없다. 설사 성공하더라도 그것은 민주주의의 승리(V for Victory)가 아니라 V 개인의 복수(V for Vendetta)일 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서틀러와 V는 사실 등을 맞대고 있는 샴쌍둥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 파괴와 혼란이라는 수단을 교묘히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모두 음모론자들이다. 유일한 차이는 그 음모가 국민들의 지지를 얻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워쇼스키 버전). 이것은 기실 역사의 진리이기도 하다. 독재자와 반란자는 개인이지만, 그들 뒤에 민중의 동의가 존재하지 않는 한 독재와 반란은 언제나 실패하기 때문이다. 1604년 11월5일, 가톨릭 탄압에 저항하기 위해 가이 포크스는 의사당 지하에 폭약을 설치했지만 동지의 배신으로 적발당해 죽자 런던의 민중은 환호했다. “기억하라, 기억하라, 11월5일을. 폭약의 배신과 음모를.”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가이 포크스 인형을 불태우고 불꽃놀이를 즐겼다. 같은 노래가 이 영화에서는 승리와 저항의 메시지로 사용되고, 런던의 민중은 가이 포크스(V) 복장을 입고, 의사당은 폭발한다. ‘파시즘이든 저항이든 인민의 지지가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영화는 이 단순한 진리를 말하기 위해 2시간을 화려하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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