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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미리 보기 [2]
사진 이혜정이다혜 2006-04-13

장소 & 시간_“서울에 이런 곳들이 있었다니!”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다. 노동석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서울 구석구석을 영화 속에 잡아낸다. 실내장면을 늘리고 장소를 줄이는 게 쉬운 걸 몰라서는 아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서울에는,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은 여느 메트로폴리탄의 화려한 치장 대신 서울이 지닌 날것의 표정이 살아 있다. 종대와 기수, 요한이 단란한 한때를 보내는 지하실 장면을 찍은 장소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한 아파트 지하실로, <플란다스의 개>에 출연한 적이 있는 곳이다. 마치 문없는 원룸처럼 시멘트 벽으로 칸칸이 나뉜 거대한 지하실은 곳곳에 빛을 다르게 주는 것만으로 현실과 판타지를 모두 느끼게 하는 공간이 되어준다.

종대 역의 유아인

종대와 기수가 일상을 사는 현실적 공간으로서의 서울은, 영화 속과 마찬가지로 영화 밖에서도 그리 녹록지 않았다. 을지로 4가 뒷골목에서 종대가 총을 사러 가는 대목을 찍던 날, 행인들이 제작진을 보고 두리번거리는 통에 촬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스탭만 빼고는 모두 골목 뒤로 숨어야 했다. 좁은 골목을 수시로 드나드는 차 때문에 자주 촬영이 끊기는 것은 그나마 참을 만했다. 좁은 골목을 찾아 들어갈수록 촬영하는 시간보다 뭘 하는지 묻거나 촬영 협조를 부탁하는 사람들을 응대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시나리오에는 없던, 종대와 정은이 모텔 골목에서 우연히 마주쳐 승강이를 벌이는 장면을 찍을 때는 모텔 영업이 안 된다며 큰 소리를 내는 모텔 주인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들었다. 크고 작은 불편을 겪으면서도 서울의 여러 장소를 영화에 담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노동석 감독은 딱 잘라 대답했다. “촬영을 위해 혹은 장소 헌팅을 위해 돌아다니다 보면 카메라들은 대체 다 어디 가 있나 싶을 때가 있다. 영화 속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데, 이런 장소에서 영화를 안 찍으면 다들 어디 가 있는 걸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마포의 뒷골목, 세운상가 뒤편, 신촌 뒷골목 같은 서울 시내 곳곳을 포함해 안동 근처에 있는 고속도로까지 다양한 곳을 돌아다녔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시나리오에서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 중 하나는 공간뿐 아니라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다. 영화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시간이 있고, 영화의 시간이 아니면 전달할 수 없는 감성적 정보가 있다. 노동석 감독은 이런 장면들을 표현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에서부터 신경을 썼다. 정보 전달을 위한 플래시백도 상투적이고 지루한 느낌을 피하기 위해 영화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방법들을 동원했다. 촬영, 미술, 조명 스탭들이 CG없이 아날로그 기술만을 이용해 영화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 두 시간이 공존하게 했다. “과거를 담는 영화들은 많지만 잘하지 않으면 조악해 보일 수 있다는 맹점이 있다. 영화는 시간을 잘라서 보는 것인데 사실 시간은 계속 흐르는 것 아닌가. 영화적으로 표현된 과거를 볼 때 가슴 아프고 짠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우리는 그 이후를 봤지만 등장인물들은 그걸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차에서 나오는 정서를 담고 싶다.”

상업영화 & 관객_“전국 100개관 이상에 걸렸으면 한다”

노동석 감독은 <마이 제너레이션>을 찍을 때 독립영화라는 지향점을 가지고 만들지는 않았다.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편을 찍고 나니, 다음 작품도 같은 식으로 찍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영화를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찾은 방법이 상업영화를 찍는 것이었다.” 상업영화의 속성상 투자한 자본을 회수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했다. 당연히 상업적인 수위를 고민하게 되고,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찾게 되었다. 관객 1만명을 목표로 했던 <마이 제너레이션> 때와는 모든 것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스탭들에게 이야기한 목표는, 상업영화에 맞는 배급방식으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배급되는 것이었다. 전국 100개관 이상에 걸렸으면 한다. 전작 하면서 영화가 결국 마지막에는 배급이라는 걸 많이 느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따라가기 쉽게 모든 요소들이 배치되었다. 그렇다고 전작과 생뚱맞게 다른 영화가 나올 리도 없다. “최근 구스 반 산트의 <라스트 데이즈>를 재미있게 봤고, 로베르 브레송 영화들을 좋아하는데,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삶의 결을 담은 영화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상업영화의 틀 속에서 그런 욕심을 마음껏 낼 수는 없겠지만 편집할 때 그런 장면들에 대한 애착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야기 중심의 장면들과 상황이나 인물의 결을 살릴 수 있는 장면들을 조화시켜 담으려고 한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다가가고자 하는 관객층은, 극중 종대보다 어린, 노동석 감독의 조카들이다. “조카들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름방학 때 개봉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괴물>이랑 붙을 거냐고, 미쳤냐고들 하긴 하더라(웃음).” 시기도 문제지만 등급도 문제다. 시나리오보다 대사나 상황의 수위를 낮추기는 했지만 15세 관람가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분홍신>의 김용균 감독님이 노래방 주인으로 잠깐 출연했는데, 욕을 너무 질펀하게 하고 가셔서 후시를 해야 하나 걱정 중이다(웃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촬영을 마치고, 쫑파티를 한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 노동석 감독은 벌써 김병석과 유아인을 주인공으로 한 다음 영화를 구상 중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올 가을, 전국 100여곳의 극장에서 관객과 만날 수 있다면, 그가 “정말, 정말, 정말” 하고 싶다는 이야기들이 제작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곧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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