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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필립 K. 딕에서 배우는 인류의 운명, ‘NEXT’

천재적인 SF작가 필립 K. 딕의 단편소설 하나가 또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1954년에 발표한 소설 <골든맨>(The Golden Man)을 니콜라스 케이지가 제작자 겸 주연배우로 나서 <넥스트>(Next)라는 타이틀로 내년 2007년에 개봉한다는 것이다.

벌써 8번째 영화가 아닌가? 1982년 죽을 때까지 자기 소설이 영화로 변신한 것을 하나도 보지 못했던 필립 K. 딕은 이제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스크리머스> <임포스터> <마이너리티 리포트> <페이첵> <스캐너 다클리> 그리고 <넥스트>를 거느리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물론 단돈 25달러에 단편 하나를 써대야 했던 생전의 불운 속에서 엄청나게 양산된 그의 작품(장편 48편, 단편 121편 등) 속에는 앞으로 또 영화로 만들 만한 것이 숱하게 널려 있다. 인간과 인조인간, 외계인과 돌연변이를 동원해 존재의 정체성에 대해 무시로 실존적 질문을 내던지고… 시간의 나사를 풀어버리는 방식으로 우리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가 하면… 핵전쟁과 세계정부라는 언젠가 인류 앞에 닥쳐올 만한 이미지를 끊임없이 제시한 작가가 아닌가? 어쨌든 현재 제작하고 있다는 <넥스트>는 인간의 운명을 인류사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21세기 지구. 세계 곳곳에서 인류의 돌연변이들이 무시로 나타난다. 미국, 영국, 스웨덴, 소련(소설 속에서는 아직 존재한다)… 모두 87종류나 된다… 핵전쟁으로 추정되는 ‘전쟁’이 끝난 뒤에는 마음을 읽거나 상대방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정도의 특수한 능력을 지닌 돌연변이들마저 등장했다… 소설 속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빼어난 외모의 남성 돌연변이는 이런 돌연변이를 색출하고 제거하는 특수조직의 시설에서 유유히 탈출한다… 그 무기는 고도의 미래 예지능력… 더더욱 무서운 것은 그 황금빛으로 빛나는 미남성으로 진짜 인간 여성을 유혹하고 수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한 사람은 동료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마 네안데르탈인도 크로마뇽인을 자신들과 동등하다고 생각했을걸? 다만 부싯돌을 쓰거나 기호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조금 있을 뿐이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딕의 소설은 인류가 이 돌연변이에게 패배하고, 그 옛날 크로마뇽인 앞의 네안데르탈인처럼 사라지리라는 음울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인류사의 ‘넥스트’는 이렇게 될 수 있다는 묵시록 비슷하지 않은가?

어쨌든 네안데르탈인은 유럽지역에서 3만5천년 전까지 초기의 현대인류와 수천년 동안 공존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다가 아주 짧은 시기에 그 종족 전체가 사라지는 바람에 인류사의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이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크로마뇽인으로도 불리던 현대인류는 약 15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유전자 변화를 일으켜 호모 사피엔스가 된 종족의 후손으로 간주된다. 비록 멸종됐지만 네안데르탈인도 나름대로 대단히 발달한 종족이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들의 뇌는 충분히 컸고, 지능도 높았다. 상당한 사고력과 직관력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 정교한 돌 도구도 사용하고, 불도 다루고, 몸집이 큰 동물도 사냥했다. 종족 구성원이 죽으면 동굴에다 묻고, 부장품까지 같이 매장하기도 했다. 이런 능력으로 빙하시대라는 혹독한 기후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것이다.

“인류를 대체할 돌연변이가 소설이나 상상처럼 등장할 가능성이 있을까?”

물론 높지 않은 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식의 높은 지능이나 초능력을 가진 존재로 변이하는 대사변이 집단으로, 유기적이고 안정적인 시스템 아래, 지속 가능한 문명적 차원에서 일어날 것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런데… 딕의 메시지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일까?

어느 면에선, 이미 인류는 이런 식의 ‘부분적 멸종화 과정’에 돌입한 것은 아닐까? 같은 민족끼리 동족상잔의 대전쟁을 벌이고… 기독교-유대교 세력이 이슬람 세력과 전쟁과 테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피범벅이 되고… 스위치 몇개로 인류 전체를 멸절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여러 세력이 수십년 동안 가동하고 있으니… 이 모든 일이 ‘이브’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똑같이 가지고 있는, 그러니까 한 여성으로부터 나온 것이 분명한 인류의 손으로 자행되고 있지 않은가?

냉전체제와 매카시즘의 절정기를 경험한 필립 K. 딕이 소설 속에 상정한 인조인간이나 돌연변이 인류는 언제든 ‘소련’, ‘중국’, ‘미국’ 등의 이름으로 치환할 수 있고, 바로 그렇기에, 정작 바로 우리 자신일 수 있기에 그렇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순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