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오픈칼럼
[오픈칼럼] 강동원과 이윤석 사이
정재혁 2006-04-14

“마른 남자친구는 어떤가요?” 얼마 전 모 웹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이다. 우문에 현답이라고 답변이 더 기가 막혔다. “강동원이냐, 이윤석이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순간 적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왠지 모를 불편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한국사회에서 남자의 신체는 남성성의 상징이다. 큰 키와 강인한 체력, 키는 작더라도 탄탄한 체구는 남성이기 위한 필요조건이며, 남성성에 대한 온건한 비유다. 이정재, 송승헌, 권상우로 이어지는 몸짱 계보와 꽃미남의 외모를 지녔음에도 가슴 두짝만은 우람한 이완, 정경호, 온주완 등. 이들은 한국 남성들이 얼마나 ‘갑빠’에 대한 강박관념에 묻혀서 지내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신화의 이민우가 왜 그토록 몸을 불려야 했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최근, 한국 남자의 신체 구조에 작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압구정 갤러리아에 디올옴므 매장이 오픈했고, 강동원-주지훈 라인이 형성됐으며, 스키니 진이 유행하고 있다. 진정 이제 대한민국 남성들은 근육의 강박에서 벗어나고 있는 걸까. 한국에도 ‘마른 남자’의 시장이 형성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나의 순진한 기대는 정확히 강동원이냐, 이윤석이냐의 사이에서 갈린다. 한국의 여성들은 혹은 남성들은 마른 남자인 강동원 앞에서 환호하고 또 다른 마른 남자인 이윤석 앞에서 비웃는다. ‘절대 미모’ 강동원은 여성들에겐 순정만화 속 남자주인공이고, 남성들에겐 워너비이지만, ‘국민 약골’ 이윤석은 온갖 쇼 프로그램의 놀림감이자 국민들의 심심풀이 ‘껌’이다.

그래서 ‘마른 남자’에 대한 공격은 매우 위험하다. 이윤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온갖 험한 말을 듣고도 엔터테이너의 프로정신을 보여줬지만, 약골에 대한 멘트가 유희와 동석할 때 사태는 매우 심각하다. 한국사회에서는 이상하게도 마른 남자에 대한 발언이 외모차별주의성 멘트에서 배제돼 있다. 사람들은 과체중의 사람, 장애인을 놀릴 때는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만, 약골이란 단어를 내뱉을 때는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마른 남자라는 카테고리 안에는 강동원이 이윤석과 불편하게 동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두명의 마른 남자 사이를 아무런 저항감도 없이 오가며 감정의 양극단을 보여준다. 이것이 한국사회에서 마른 남자의 정치성이 삭제되는 방식이다.

나는 가끔 옷을 살 때, 사이즈 앞에서 머뭇거린다. 한국의 남자 의류 브랜드에는 100과 105의 남자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밖의 사이즈 옷을 갖고 있는 브랜드들도 있다. 하지만 어떤 하나의 의류 브랜드가 마른 남자의 사이즈를 삭제할 때, 그들의 존재는 무시된다. 한국의 마른 남자는 사이즈의 억압에서 차별받고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당신이 함박웃음을 날려주는 강동원은 결코 진실이 아니며, ‘국민 약골’이란 말은 엄격히 인격침해적 발언이다. 당신은 강동원과 이윤석 사이에서 남자친구를 고르고 있겠지만, 한국의 마른 남자들은 100과 105 사이에서 절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