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공격, <노스 컨츄리>

우리는 때때로 빈곤함과 약함을 순박함과 선함과 동일시한다. 다시 말하면 비자발적으로 경제적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가 된 이들이 마치 원래부터 부나 명예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는 식으로 미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숨겨놓고 ‘친절한 시민’을 찾거나 교통법규를 엄수하는 선량한 준법자를 찾는 프로그램들은 종종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밑바탕에 깔아놓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에게 선량한 심성까지 강요하는 태도 뒤에는 그들을 체제에 순응하도록 훈육하고, 없는 자들의 빈곤을 그들이 가진 도덕성에 의한 선택으로 돌리고 ‘칭찬’함으로써 가진 자들의 피해의식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따라서 이런 태도는 순간의 감동을 선사하면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눈을 감도록 만든다.

니키 카로 감독의 <노스 컨츄리>는 그런 맹목에 대한 공격에서부터 시작한다. 법정에 앉은 조시 에임스(샤를리즈 테론)는 아버지가 다른 두명의 아이를 가진 싱글맘이라는 이유로 변호사로부터 인격적 모독을 당한다. 조시는 생활고를 겪어보지 못한 채 타인의 삶을 자의적으로 평가하려는 중산층의 도덕적 결벽증을 비난한다.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온 조시는 아이들을 양육하기 위해 고임금을 보장하는 광산 일을 시작했었다. 더이상 자신의 미모를 생계수단으로 삼아 남성의 경제적 능력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에게 광산은 노동의 강도는 높지만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하는 직장이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라고 생각되었던 광부 일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조시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고된 노동이 아니라 여성 광부를 대하는 남성 동료들의 태도였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된 1980년대는 많은 광산이 문을 닫아 광부들의 대량실업 사태가 벌어지던 동시에 남녀 차별에 대한 금지 때문에 여성 노동자에 대한 할당제가 실시되고 있었다. 따라서 남성 광부들에게 여성 광부는 동료가 아니라 자신들의 일을 빼앗아가는 적으로 인식되었다. 그들은 합법적으로 자신들의 영역에 침범한 그녀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정서적 학대를 시작한다. 과도한 작업량을 강요하거나 인신공격과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농담을 내뱉음으로써 여성 광부들이 스스로 광산이 남성의 영역임을 인정하고 떠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조시는 어린 시절의 실수와 실패한 결혼을 통해 가족에게 잃은 신뢰를 광부 일을 통해 회복하고자 했다. 그녀는 아들의 꿈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능력있는 엄마,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인정받는 딸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직장이자, 자신의 일터가 된 광산은 그녀에게 육체적인 피로함뿐 아니라 치명적인 정신적 상처를 주는 곳으로 돌변한다. 남성 동료들의 무시와 학대는 물론이고 그러한 부당한 대우에 적극적인 거부를 표시하는 그녀의 태도에 오히려 적대적인 여성 광부들의 냉대와 멸시는 그녀를 철저히 고립시킨다. 아이러니한 것은 남성 광부의 적극적인 성희롱과 여성 광부들의 수동적인 무관심의 원인이 공통적으로 자기 보호본능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 다 자신들의 생계수단을 지켜내기 위해서 한쪽은 무자비한 가해자의 길을, 다른 쪽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피해자의 길을 택한다.

조시는 작업반장과 노조에 끊임없이 항변하고 처우 개선을 바라지만 돌아오는 것은 여성 간이화장실을 뒤집거나, 작업장에서 성폭행으로 협박을 하거나 여성 로커룸에 분뇨로 낙서를 해놓는 등의 더 가혹한 복수일 뿐이었다. 복수가 가혹해질수록 여성 광부들의 조시에 대한 원망은 늘어가고 철저히 혼자가 된 그녀는 법적 대응을 준비한다. 조시는 그녀가 아는 유일한, 그러나 실패한 변호사인 빌 화이트(우디 해럴슨)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설득하고, 자신의 소송에 힘이 되어줄 동지들을 찾아 나선다. 체제를 바꾸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핍박을 당하게 마련이다. 이상한 것은 그러한 핍박은 언제나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해서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득권 세력이 움켜쥐고 있는 커다란 파이는 보지도 못하고 파이의 부스러기로 연명하는 이들조차도 그 부스러기마저 빼앗기게 될까봐 폭력을 묵인하거나 심지어 동조하곤 한다. 그래서 법정에 서기 전까지 조시는 단 한명의 여성 동료도 자기 편으로 만들지 못한다.

니키 카로는 전작 <웨일 라이더>에서 남자 아이들에게만 주어졌던 지도자의 운명을 자신의 것을 만들기 위해 투쟁했던 파이키아라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현대사회에서 전통적인 성역할 구분에 따른 운명과 개인 의지 사이의 갈등은 시효가 지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1984년 미국에서의 최초의 직장 내 성폭력 승소 사건인 ‘젠슨 대 에벨레스 광산 사건’을 영화화한 <노스 컨츄리>에서도 동일한 문제의식이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21세기인 현재 시점에서도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성적 폭력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성추행 문제는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권력과 성의 상관관계와 남녀간의 시각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여성과 남성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에 대한 문제이며, 계층과 공간을 초월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우리는 때때로 과거의 불합리한 상태에 비해 현재는 얼마나 진보된 상태인가에 초점을 맞추며 중요한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고 자위하곤 한다. 하지만 <노스 컨츄리>는 그러한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 ‘조시’들의 희생적인 투쟁과 가족과 동료들의 지지와 지속적인 관심을 요구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의 대사처럼 “약자는 뭉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무너지는 수밖에 없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