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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아파본 적 있나요? <쇼핑걸>
정재혁 2006-04-25

‘사랑에 아파본 적 있나요?’ 코미디 배우 스티브 마틴이 2000년에 쓴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쇼핑걸>은 사랑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세 사람을 그린 영화다. 베버리힐스에 자리한 삭스백화점 장갑 매장에서 일하는 숍걸(Shopgirl) 미라벨(클레어 데인즈), 그녀는 그림으로 성공하기를 바라는 화가 지망생이다. 하지만 그녀의 현실은 따분하기만 하다. 장갑 매장을 찾는 손님은 하루에 한두명이 고작이고, 아직 다 갚지 못한 학비 대출금은 끝날 기미도 안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두명의 남자가 찾아온다. 한명은 앰프에 페인트로 로고를 그리는 폰트 디자이너 제레미(제이슨 슈월츠먼)고, 다른 남자는 50대의 백만장자 레이 포터(스티브 마틴)다. 동전 세탁방에서 처음 만난 제레미와 미라벨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데이트를 시작하지만, 미라벨에게 제레미는 영 마뜩지 않은 상대다. 걸핏하면 돈 좀 꿔달라고 말하기 일쑤고, 아이맥스 영화관까지 가서는 입장료가 비싸다며 밖에서 구경하자고 한다. 그러나 레이 포터는 다르다. 100달러가 넘는 검정색 장갑 선물로 미라벨에게 접근한 그는 달콤한 와인과 멋진 저녁식사는 물론 순백의 이브닝 드레스까지 선물한다. 하지만 두번의 이혼 경험이 있는 포터는 더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다. 미라벨은 포터와의 달콤한 사랑에 행복해하지만, 더이상 다가갈 수 없는 선 앞에선 눈물을 흘린다.

포터를 향한 미라벨의 마음, 미라벨을 향한 제레미의 마음. 영화는 서로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세 남녀의 모습을 담담히 지켜본다. 포터는 끊임없이 “섹스는 하되 그외 다른 옵션들은 꺼놓자”고 얘기하고, 미라벨은 사랑에 회의적인 포터의 입장을 체념하듯 받아들인다. 미라벨에게 한번 퇴짜를 맞은 제레미도 사랑에 목매듯 매달리지 않는다. 세 주인공의 관계를 묘사하는 영화의 감성은 풍부하지만 별다른 사건없이 진행되는 드라마는 지루하기도 하다. 클레어 데인즈의 농익은 연기는 과함도 모자람도 없으며 제이슨 슈월츠먼의 능청스러움도 자연스럽다. 특히 <열두명의 웬수들> <핑크 팬더> 등을 통해 주로 코미디 연기를 선보였던 스티브 마틴은 이 영화에서 사랑엔 냉소적이지만, 인생은 긍정하는 중년 남자의 고독함을 연기하여 멜로 배우로 멋지게 변신했다. 사랑의 상처를 담담하게 바라보는 이 영화의 매력은 배우들의 호연이 절반이라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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