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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진실보다 중요하다, <하늘이시여>
석현혜 2006-05-04

죄책감없이 욕망만을 탐하는 주인공들의 세계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SBS 주말드라마 <하늘이시여>(극본 임성한, 연출 이영희)가 주간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매회 화끈하게 펼쳐지는 등장인물들간의 싸움과 말다툼, 주인공 커플의 닭살 연애, 출생의 비밀을 둘러싼 음모와 반전 등이 적절하게 배치된 이 롤러코스터 드라마는 보는 재미만은 확실하게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 친딸을 며느리로 맞아들인다는 설정으로 언론의 몰매를 맞기는 했지만, 사실 이 비틀어진 설정이야말로 <하늘이시여> 재미의 원천기술이다. 계모의 구박으로 가난하고 불행했던 신데렐라 자경(윤정희)은 어느 날 친절한 요정 영선(한혜숙)의 도움으로 상류사회에 거주하는 왕자 왕모(이태곤)를 만난다. 신데렐라를 도와주는 요정이 바로 자경이 어릴 적 생이별한 친엄마 영선이고, 이 ‘친절한 영선씨’는 자신이 ‘친자식처럼’ 길렀다는 왕모와 자신의 ‘친자식’ 자경을 과감하게 결혼시킨다.

자경과 영선 사이에는 드라마 단골 소재인 고부간의 갈등이 존재할 리 없으며, 오히려 영선은 자경을 시댁살이 시키는 왕마리아 여사(정혜선)와 시누이이자 왕모의 여동생인 슬아(이수경)에 맞서 자경을 감싸준다. 신데렐라는 자신의 결혼생활에 가장 큰 천적이 될 수 있는 시어머니를 안전한 자기 편으로 만들어 모든 며느리가 꿈꾸는 행복한 시가 생활과 함께 왕자의 아이까지 잉태하며 행복 탄탄이다.

법적으로는 용인받을지 몰라도 일반적인 의식상 문제 많은 이 설정은 계모의 구박 아래 눈물짓는 자경의 처량한 모습과 ‘내 새끼, 힘들었지’ 하는 영선의 내레이션에 힘입어 ‘그럴 수도 있지, 어쨌든 모두 행복했으면 됐잖아’라는 한국식 가족주의와 인정론에 묻혔다. 오히려 영선은 자경을 담보로 자경의 친부인 홍파(임채무)와 영선을 연결시키려는 모란실 여사(반효정)의 음모 때문에 비밀이 탄로날까 전전긍긍하는 가녀린 여인으로 둔갑한다.

물론 여기에서 자신과 피가 반반씩 섞인 언니와 오빠의 결혼을 받아들여야 하는 슬아나 졸지에 자기 손자가 자기 며느리의 사위가 됐다는 복잡한 가족관계를 가져야 하는 왕마리아 여사의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주인공이 아니니까.

마치 영선과 홍파의 멜로를 위해 단번에 홍파의 전처인 은지(김영란)를 교통사고로 해치운 것처럼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행복과 대치되는 입장에 서 있는 캐릭터들은 이 세계의 창조주인 작가에 의해 언제든 움직일 수 있는 체스 말일 뿐이다. 그러니 각각의 주동 캐릭터와 반동 캐릭터가 당위성을 가지고 서로 부딪치고 대결하며 그 과정에서 함께 성장하고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가 가지는 본질적인 힘을 이 드라마에 기대한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욕망이고, 딸을 위한 어머니의 최고 선물은 좋은 남편과 부잣집 며느리 자리라는 속물적 판단이 어떤 여과장치도 없이 생으로 드러나는 <하늘이시여>의 세계는 죄책감없이 욕망만을 탐하고픈 우리 안의 나르시시즘을 자극한다. 재벌에, 신데렐라에, 말 잘 듣는 착한 마마보이 아들과 남편에, 첫사랑과의 결합에, 이 빼곡히 들어찬 마스터베이션의 목록이 충실하게 주말 밤을 채우고 있는데, 드라마가 끝난 뒤 몰려오는 허무감과 찝찝함쯤이야 무에 그리 대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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