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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재패니메이션
2001-02-15

나우시카가 인터넷을 만났을 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이하 <…나우시카>)의 국내 개봉은 몇몇 마니아들에겐 정말 눈물나는 사건이었음이 분명했다. 화질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복사본 비디오테이프를 은밀히 돌려보던 10여년 전의 마니아나, 일본 혹은 미국에서 공수한 LD로 고화질과 입체음향을 즐기던 요즘의 마니아나, 모두 극장에서 <…나우시카>를 만날 기회는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원래 극장용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 극장에서 개봉되는 것이 이렇게 일종의 사건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오래된 뒷이야기를 들추어내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일본에서 만들어졌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좋은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시대를 마니아로 살았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어쨌든 <…나우시카>의 개봉으로 국내의 일본 애니메이션 관련 사이트, 미야자키 하야오 관련 사이트들을 통해 마니아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나우시카>의 국내 개봉은 비단 한국 마니아들만의 사건이 아니었다. 영문으로 된 주요 관련 사이트들이 이 소식을 특별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미야자키 하야오 관련 홈페이지 중 하나인 나우시카닷넷의 경우, ‘Special Headline’이라는 제목하에 한국 개봉소식을 전하고 한글 공식홈페이지로의 링크도 제공하고 있을 정도다. 물론 대부분 미국인 혹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구성된 그 홈페이지의 제작진들이 우리가 느끼는 특별한 감회를 이해했을 리는 없겠지만, 자신들이 숭배하는 걸작이 뒤늦게나마 한국에서 개봉된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와 더불어 미야자키 하야오가 올 여름 개봉을 목표로 작업하고 있는 "Sen to Chihiro no Kamikakushi"에 대한 정보도 마니아들을 들뜨게 하고 있는 중이다. 가장 큰 이유는 돼지로 변해버린 부모님을 원래 모습대로 돌려놓기 위해, 소녀 치히로가 귀신나라에 가서 벌이는 모험을 그릴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으로 한동안 일선에서 물러났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복귀하기 때문이다. 다만 지브리 스튜디오와 제휴를 맺은 디즈니가 제작비의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 혹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명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가 팬들의 믿음을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한편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또 하나의 일본 애니메이션 관련 소식은 <은하철도 999> 시리즈의 최신판인 <메텔 전설>이 일본에서 OVA(Original Video Animation)로 출시되었다는 것이다. 총두편으로 제작된 <메텔 전설>은 1편이 지난해 12월 초부터 판매가 진행되고 있고, 2편은 현재 비디오숍을 통해 대여를 시작한 상태로 올 3월에 판매용이 출시될 예정이다. 이 OVA가 마니아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이유는, 그간 많은 혼란이 있었던 천년여왕, 메텔, 에메랄다스(메텔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하록선장처럼 옷을 입고 얼굴에도 상처가 있는 캐릭터) 등 마쓰모토 레이지의 주요 여성 캐릭터들의 관계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메텔 전설>에 따르면 <은하철도 999>의 메텔과 <퀸 에메랄다스>의 에메랄다스가 쌍둥이이며, 그녀들의 어머니가 바로 <천년여왕>의 천년여왕 프로메슘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라 메탈이라는 행성의 여왕 프로메슘이 굶주림과 추위로부터 고통받는 사람들을 살려내기 위해, 천재 박사인 하드 기어의 인류 기계화 계획을 받아들이고 자신도 기계화되면서부터다. 그러나 그 기계화 계획이 하드 기어의 지배 음모라는 것을 알게된 프로메슘은 자신의 쌍둥이 딸인 메텔과 에메랄다스를 탈출시키려 하고, 하드 기어는 이를 막으려 한다. 프로메슘은 딸들에게 은하철도 999의 존재를 알려주고, 지구로 가서 지원을 받아오라는 부탁을 한다. 다행히 하드 기어를 물리친 메텔과 에메랄다스는 은하철도 999에 오르지만, 완전히 기계화되어 인간성을 잃어버린 프로메슘이 그녀들을 공격하게 된다.

그 공격에서 살아남아 은하철도 999에 몸을 실은 두 소녀 메텔과 에메랄다스의 이후 이야기가 70년대 말부터 20년이 넘게 계속 제작되고 있는 <은하철도 999> <천년여왕> <퀸 에메랄다스> 등 주요 마쓰모토 레이지의 TV판, 극장판 애니메이션들을 통해 전개돼왔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방대한 이야기의 구조를 미리 짜놓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메텔 전설>조차도 다른 작품들 속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들과 통시적으로 잘 들어맞지 않는 것이 사실. 이에 대해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애써 통합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완전히 별개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기도 하다.

여하튼 이렇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관련 소식들을 정리하다보면, 전세계 수많은 젊은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오마주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된다.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텍스트로 삼아 그것을 바탕으로 하나의 세계관까지 형성해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대단해 보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러한 세계를 이끌어가는 미야자키 하야오나 마쓰모토 레이지 같은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혹은 장인을, 이제 우리도 가졌으면 하고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bandee@channeli.net

▣레인보우의 <메텔 전설> 홈페이지

http://www.geocities.com/rainbowow/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한글 홈페이지

http://www.nausicaa.studiog.co.kr/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영문 홈페이지

http://www.nausicaa.net/miyazaki/nausicaa/

▣라비린스의 미야자키 하야오 홈페이지

http://user.chollian.net/~typhoon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