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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상한 코미디를 덮어 주는 캐릭터의 매력, <생, 날선생>
김나형 2006-05-23

주호(박건형)는 직업이란 걸 가질 생각이 없다. 할아버지가 로또에 당첨된 뒤, 컨버터블을 타고 ‘밤마실’을 다니며 그 돈을 사회로 환원하는 게 그의 일상이다. 전직 교장이었던 할아버지는 그의 카드를 볼모로 잡고 딱 2년만 학교에서 일하라고 제안한다. 돈이 없으면 언니들과 술을 못 마시고, 언니들과 술 없으면 인생에 낙이 없고…. 억지춘향꼴로 선생은 되었으나 열심일 리 만무하다. 수업은 자습, 종례는 전화로, 나이트 가야 하는데 야자 감독 웬말이냐. 그런 그에게 여선생 소주(김효진)는 심술 같기도 하고 애정 같기도 한 관심을 표해온다.

설정과 줄거리를 놓고 보면 <생, 날선생>은 흔한 억지 코미디다. ‘양아치’가 ‘학교’에 가서 ‘무서운 고딩’ 그리고 ‘여선생’과 어떤 종류의 해프닝을 벌일 것인지는 대체로 짐작가는 바다. 주호의 날선생짓, 소주와의 티격태격 연애담, 심지 굳은 반항아와 모범생, 힘없는 교권, 양아치가 말하는 정의 등 식상한 얘기들이 산만하게 전개된다. 그러나 <생, 날선생>은 그런 단점을 덮는 한 가지 미덕을 가졌으니, 주호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이다. 주호는 한마디로 양아치다. 면도칼 좀 씹어본 종류가 아니라 놀기 좋아하고 언니 좋아하는 종류다. 이런 캐릭터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살 뿐, 권위나 규율에 복종하지 않으며 남에게도 복종을 강요하지 않는다. 양아치 선생은 수업을 땡땡이치고 모텔에서 안마를 받으면서 반장에게 전화를 건다. “공부하느라 고생 많았지? 청소? 어제 했는데 청소를 또 해? 그냥 다음달에 하고….” 청소는 매일 해야 한다는 식의 소소한 강요를 태연히 분쇄하는 것이 통쾌하다. 반 여학생이 강간당할 뻔했다는 소식에 주호는 선생의 얼굴이 아닌 사람의 얼굴로 달려온다. 사색이 된 그는 경찰서 책상 앞에 앉은 아이를 감싸안으며 “일단 집에 가자”고 한다. 그가 좋은 선생인 이유가 있다면 권위가 아니라 상식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박건형의 몸에 실린 주호의 매력은 산만한 줄거리에 일관된 웃음을 불어넣는다. 김효진의 왈패 연기에서도 노력의 흔적이 엿보인다. 거기에 웃기거나 울리려는 강박이 없는 담백한 연출이 더해져, 이 식상한 코미디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볼 만한 영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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