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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의 카멜레온, 칼날 같은 변신, <메멘토>의 가이 피어스
위정훈 2001-08-29

<메멘토>라…. 내가 왜 이 영화에 출연한 거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찾아야 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내게 출연해달라고 전화를 해왔나? 아니군,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를 촬영하던 중에 처음 만났다고 사진 밑에 써 있네. 내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군. 이런, ‘레너드 역으로 출연시켜 달라고 간절히 요청할 것’이란 메모는 평소의 나답지 않은 것 같은데? 난 언제나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절제하는 사람인데, 아닌가? 기억할 수 없군.

이 녀석은 분명히 내 얼굴인데, 에드 엑슬리 경사라? (1997)이군. 이 성공하니까 러셀 크로와 함께 단숨에 할리우드에 얼굴이 알려진 모양이군. 온갖 신문에 내 얼굴이 실렸네. 하지만 난 사방에서 들려오는 달콤한 속삭임들을 경계했나봐. 같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이었던 러셀 크로와는 다른 길을 걸어갔고. 러셀은 <글래디에이터> 등 블록버스터로 날아갔지만, 난 할리우드 시스템에 들어가기 싫었나봐. 밑에 ‘아무도 믿지 마라’, ‘나에게 들어온 수많은 스크립트들을 읽어봤지만, 할리우드 온실에서 재배한 시나리오는 싫었다’고 써놨잖아? 그래서 <레버너스>(Ravenous)를 선택했군. 육군 장교들이 인육의 맛을 알아 다른 장교들을 먹는다는 줄거리라니, 정말 살아 펄떡이는 영화 같군. 그런데 감독 이름이 세번이나 바뀌어 있는 걸 보니 순탄한 촬영은 아니었나보네. 게다가 벽에 붙여둔 스크랩에서도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쳤다니…, 쯧.

<프리실라>(1994) 홍보하러 미국에 왔다가 수많은 오디션을 봤다고.. 그랬었나? 커티스 핸슨 감독이 15분 동안 오디션을 본 뒤 나를 캐스팅했다고 써놨군. 이 드랙 퀸 사진이 <프리실라>군. 기억을 더듬으려 노력하지 말자. 어차피 내게 남은 기억의 흔적이란 몇장의 사진들뿐이니. <프리실라>는 사막을 횡단한 세명의 드랙 퀸 이야기라…. 나는 신랄한 혀를 가진 드랙 퀸 펠리시아였고. 타조 분장도 그렇고, 벌통 같은 파란 가발도 그렇고, 세명 중 가장 튀는 패션이야. 그런데 <메멘토> <프리실라>의 사진들은 아무리 봐도 전혀 나 같지 않은데? 캐릭터에 따라 이렇게 완벽하게 변신하다니. 난 정말 배역에 완벽하게 녹아드는, 카멜레온 같은 배우인가봐. 꽤 눈썰미 있는 나도 나를 알아보기 힘들다니. 금발로 염색한 <메멘토>의 레너드는 더더욱.

아, 벽에 붙은 낡은 신문기사는 뭐지? 꽤 오래된 것이군. ‘비행기 사고로 파일럿 사망’이라. 아버지가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셨군. 난 8살이었고. 3살 때 영국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했다니 5년 만에 돌아가신 거로군. 신문기사 밑에 깨알같이 써놓은 글은 뭐지? ‘그때부터 나에게 연기란, 일종의 생존전략이었다. 어머니를 도와 여동생을 돌보고,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보이는 표정짓기가 첫 연기였다.’ 아하, 연기학교를 다녔던 건 아니군. 신문기사를 보면, 11살부터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뮤지컬에 출연, 15살 무렵부터 정서적 불안감을 해소하고, 약한 신체를 단련하기 위해 보디 빌딩을 시작…. <메멘토>의 카메라가 낱낱이 훑어내려가는 나의 육체는 이때부터 단련된 거였군. ‘1986년, 오스트레일리아 TV드라마 <이웃들>(Neighbors)로 데뷔,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뒤 <헤븐 투나잇> <헌팅> 같은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난 할리우드로 가기 전에 이미 오스트레일리아에선 꽤 스타였나보다. 그럼, 내게 올 미래는 뭐지? <인간의 목소리가 우리를 깨우리라>에선 헬레나 본햄 카터와 공연하고, 몬테크리스토 백작도 되어보겠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할리우드를 거북해하고, 여전히 채식주의자이겠지. 음악을 좋아하고 무엇보다 멜버른에 있는 집과 아내를 사랑할 것이고. 기억하자. 아니,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적어둬야 해. 어서 사진을 찍고 적자. 이것들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어디다 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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