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우키시마마루호는 부산에 오지 못했다
2001-08-31

1945년 8월24일, 해방과 귀국의 기쁨을 채 만끽하지도 못한 한국인들을 태운 귀환선이 일본 교토부 마이즈루만에서 폭파, 침몰됐다. 일본 정부는 자국 해군의 특별수송함 우키시마마루의 폭침으로 조선인 524명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원인은 미군이 부설한 기뢰에 부딪혔다는 것. 그러나 생존피해자와 유족들은 발표를 믿지 않았다. 배에는 조선인 7500명이 타고 있었고, 5천여명이 수장됐으며, 사고가 아니라 계획적으로 폭파됐다는 의혹이 아직도 남아 있다.

8월23, 24일 서울에서 잇따라 시사된 <아시안 블루>와 <살아있는 영혼들>은 그 우키시마마루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다. 이중 먼저 제작된 영화는 일본 호리카와 히로미치가 감독한 <아시안 블루>. 이미 소개된 대로 헤이안시대의 수도였던 교토의 시민들이 제작비를 모금해 정도 1200년 기념사업으로 만든 영화다. 1995년 완성됐으나 당시 일본영화의 국내개봉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피해당사국인 한국에서는 상영될 수 없었다. 그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제한된 관객을 놓고 공개됐을 뿐이다. 부산영화제에서 상영하고 싶다는 뜻도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광주시민연대에서 올 가을 국내상영 계획을 잡아놓고 첫 일반시사를 한 것이다. 영화는 우연히 우키시마마루호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일본 젊은이들이 일제의 한반도 침략 진상까지 가닿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최근 일본에는 역사교과서에 수록된 일본군 위안부사건을 삭제해야 한다는 등 우파들의 시대착오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 망언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전후 세대가 알지 못하는 지난 시대의 과오를 다시 생각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시민대표는 말했다. 그의 우려는 몇해가 지난 지금 현실이 되어 나타났고, 그것을 시민들이 연대해 막아야 한다던 처방 역시 현실에서 설득력을 발휘했다. 지난해 북한에서 만든 <살아있는 영혼들>은 ‘북한판 타이태닉’이라는 별명을 달고 해외영화제를 돌아온 영화다.

두 작품은 태생부터 예술과 기술로서의 영화사보다 영화의 사회사쪽에서 더 관심을 끌 운명이다. 마침, 23일 일본 교토 지방법원은 이 사건의 생존자와 유족 8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공식사죄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본 정부는 15명의 생존피해자들에게만 1인당 300만엔의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것인가. 영화들이 진상조사를 위한 동력을 제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