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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포물’의 전형을 탈피하려는 의도, <아랑>
박혜명 2006-06-27

섬뜩한 노랫가락과 함께 컴퓨터 모니터에 스스로 뜨는 화면 ‘민정이의 홈페이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어 샤워실 천장에 드리우는 검은 머리칼 그리고 여자 귀신의 형체. 이튿날 시체로 발견된 남자. 부검 결과는 청산가리로 인한 독살이다. <아랑>에서 세건의 연쇄살인은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된다. 이 연쇄살인을 담당하게 된 강력반 형사 소영(송윤아)과 현기(이동욱)는 정신과 의사 동민(이종수)을 유력한 용의자 선상에 올린다. 동민은 세명의 희생자들과 대학 동창이었고 독극물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며 민정이와 관련된 10년 전 사건 때문에 최근까지도 희생자들과 갈등을 빚었던 인물이다.

<아랑>은 ‘한국의 공포물’이 가진 전형을 탈피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한국의 공포물이다. 시간이 해결해줄 수 없는 비극적인 과거사, 죄를 짓고도 살아남은 인간, 그를 처단하려는 여자의 원혼이라는 한국 공포물의 3대 필수요소는 변함없이 반복되지만 그 속에서 <아랑>은 원혼과 영매의 관계, 유죄자를 처단하는 주체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원혼인 민정이 당한 비극과 그녀의 영매 격인 여형사 소영의 비극을 오버랩시키는 설정이라든지, 형사물의 성격을 강화해 ‘후더닛’의 재미를 노린다든지 하는 점이 그런 노력의 결과다.

이런 시도가 기존 공포물의 관습과 잘 어우러졌다면 <아랑>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재미를 엿보게 하는 공포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곳곳에서 드러나는 플롯상의 허점과 무리한 결말로 <아랑>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요즘 관객이 열광해 마지않는 ‘반전’의 관점에서 볼 때 <아랑>이 꾸며낸 이중의 미스터리 구조는 치밀해서 충격적이라기보다 앞뒤가 맞지 않아서 충격적이다. 이 영화에서 모든 비극을 야기한 성폭력의 테마도 정교한 문제의식으로 와닿지 못하고 혼돈의 플롯 속에 갈 곳을 잃는다.

공포의 효과를 노린 시청각적 표현이 상투적이라는 점, 덜 다듬어진 대사가 배우들의 연기를 방해한다는 점 등은 작은 흠에 불과하다. <회전목마> <마이걸> 등 TV드라마에서만 활동해온 이동욱의 첫 영화 연기가 상대배우 송윤아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것, ‘토이’의 유희열이 운영하는 음반 프로덕션에서 맡은 오리지널 스코어가 서정적이고도 비극적인 뒷배경을 잘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 <아랑>이 기대 이상의 만족을 주는 대목을 꼽으라면 이렇게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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