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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 시시콜콜 Q&A [3]

4장 부르나 오브 러브랜드의 추억

“너무 좋아해서…”

-영화 속에서 연애를 하는 기회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데 아쉬움은 없는지요.

=연애영화에는 왜 느끼한 게 있잖아. 난 그렇게 여자를 보는 게 너무 쑥스러워. 그쪽 연기에 좀 약한 편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본다든가, 어떤 욕정을 표현하는 게 쑥스러워서. 그런 식의 접근도 있지만 다른 데 매력을 느껴. <쇼생크 탈출>에 나온 모건 프리먼 같은 배우는 나이가 들어서 묘한 매력을 주거든. 그건 일반적인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고. 일반적인 러브신은 편하지가 않아.

-배역에 빠져서 미쳤었나보다, 한 적이 있나요? 늘 연기에 안정된 이성의 틀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후배배우들은 카메라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움직이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연기하는 분이라 감탄스럽다고들 하고요.

=좋은 의미에서의 광기, 그런 게 나한테는 좀 모자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연기하고 그런 편이거든. 나의 습관 같기도 하고, 또 카메라 메커니즘에 어려서부터 익숙해왔기 때문에 그 사이즈에는 이 정도 표현이면 될 것 같다, 그런 걸 미리 알았던 것 같아. 연극을 하다가 영화를 해서 그런 걸 모르는 분들이 광기가 있더라고. 나한테는 어떤 식이 맞냐 하면, 신나서 하는 것, 그런 쪽인 것 같아. 어, 비가 오네. 소나기 같지?

-비 구경 좋아하세요.

=비, 무지 좋아하지. 비올 때 운전하는 걸 제일 좋아해. 와이퍼 상태가 무지 좋아야 하지. 삐거덕거리면 안 되고 사악 삭…. 비는 사람을 가라앉히고 편안하게 만드는 게 있는 것 같아. 난 운전하는 것도 아주 좋아하거든. 그래서 여태까지 운전기사도 없고 매니저도 없잖아. 혼자 다니는 편안함, 그게 나한테는 제일이지. 차에서 막 노래도 할 수 있는데, 옆에 누가 있으면 삼가야 될 테니까.

-그런 위치에서 매니저를 안 둔다는 건 드문데, 불편하지 않으세요.

=난 편해서 좋은데 후배들이 좀 보기가 그런가봐. 자기네들은 매니저들이 챙겨주고 그러는데 내가 옆에 혼자 하고 있으면 좀 불편해하고…. 그래도 아직까지는 혼자 있는 편안함이 훨씬 좋아. 그런데 누가 시나리오를 갖고 만나자고 한다거나 그럴 땐 상당히 어려워. 매니저가 있으면 매니저한테 나 못한다고 해, 그럴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직접 만나야 하니까…. 감독 입장에서는 배우 본인하고 못 만나고 퇴짜를 맞는 게 속상한 일일 거야. 난 못한다 그래도 만나서 말하거든. 못해도 하여튼 만나봬서 좋아요, 그러고 헤어지는 거지. 현장에서는 스탭들하고 좀더 잘 어울릴 수 있어. 매니저들하고 같이 오면 아무래도 거기에 싸여서 접촉을 덜 한다고. 나도 처음이라면 그런 매니지먼트 시스템에 들어가야겠지. 근데 워낙 이쪽에 익숙하다 보니까…. 어떤 때는 무지 힘들지. 우편물 하나 부치러 우체국에 갔는데, 나왔더니 아 차에 딱지도 하나 붙어 있고 그럴 때. 운전기사라도 있으면 딱지 안 떼도 될 텐데. 그 순간에만 아쉽지 나머지는 더 편해.

-비, 운전말고 또 뭐 좋아하세요. 음악은요.

=요즘 음악처럼 빠른 템포는 별로 안 좋아하고, 예전 포크송이라든가 영화음악 같은 거, 클래식은 잘 모르니까 좀 대중적인 곡을 좋아하지. 60년대 음악이 참 좋았던 거 같아. 사람 마음을 잘 만져주는 것 같고, 정서적으로 푸근한 게 있어. 요즘엔 오디오음악 아냐, 전부. 보는 음악이니까 들어선 느낌이 안 오지.

-말하자면 아날로그 스타일이신 거죠.

=그렇지. 난 라디오를 아주 좋아하거든. <김세원의 영화음악실>이나 같은 프로그램 참 좋아했고.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느낌의 목소리랑 음악을 같이 들으면 푸근해지고, 하루 동안 고통받은 것들을 감싸주는 것 같고. TV는 너무 장난스럽고 그런 게 정서에 안 맞으니까 잘 안 보게 돼. 케이블TV 영화보고, 스포츠 좋아하니까 스포츠 보고, 바둑 가끔 보고.

-<무사> 때도 하일 역의 정석용씨랑 가끔 바둑 두셨다는데, 취미인가봐요.

=내가 잡기가 어마어마하게 많아. 혼자 시간 보내는 건 물론, 누구랑 있어도 뭘 하고 놀 수가 있어. 바둑은 잘은 못하고 한 6∼7급 돼. 공 갖고 노는 건 싫어하는 게 없어. 잘한다는 건 아니고. 축구나 배구나 농구나 야구나 다 좋아해. 골프도. 골프는 영화쪽에서는 아주 잘 치는 편이지. 아, 당구도 좀 치지. (웃음) 낚시도 무지무지 좋아해. 이렇다보니 오히려 다 억제를 해야 하지.

-강아지도 좋아하세요.

=무지 좋아하지. 너무 좋아해서 못 키워. 완전히 새끼 때 데려온 폭스테리아를 늙어 죽을 때까지 키웠거든. 이름이 부르나 오브 러브랜드였는데, 진짜 가족 같았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와서 대학 졸업하고 제대할 때까지 있었나. 10살 넘어서부터는 심하게 냄새나는 할머니가 됐지. 냄새 때문에 잘 못 안다가 한번 안아주면 너무 좋아하면서 달려오고. 어느 목요일에 어머니가 씻겨줬는데, 힘이 없어서 못 일어나더라고. 그날밤 잠을 자는데 다들 잠이 오나. 방마다 문은 못 열고 워우∼ 하는 마지막 신음소릴 듣는 거야. 죽었는데, 난 못 나가겠더라고. 어머니가 인공호흡을 하니까 살아났다가, 다시 죽었어. 그놈 키우기 전에는 도베르만, 복서 많이 키웠는데, 그뒤론 개를 못 키우겠더라고. 그놈 내 담배 심부름도 얼마나 잘했는데. 담뱃가게에 말해서 입에 돈 물려줄 테니까 담배를 주라고 했거든. 그놈하고는 추억이 너무 많았어요.

5장 배우의 길

“사람 속을 어떻게 알아?”

-요즘 개런티는 얼마나 받으세요.

=그건 안 가르쳐주지. (웃음) 힌트? 그런 대로 괜찮게 받는다. (웃음) 적다고 할 순 없지. 근데 많은 것도 아니야. 물론 순전히 내 잣대지만. 누가 얼마 받는다는 잣대는, 예전부터 크게 생각을 안 했어. 남의 잣대 신경 쓰다보면 불행해지거든. 자기가 초라해질 수도 있고. 난 그걸 막기 위해서 미리 배수의 진을 쳐놓은 거지. 내 스타일대로 가겠다고. 그래서 예전에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때도 덜 받은 적도 있고. 근데 작품마다 다르게 받을 필요는 있어요. 외국도 마찬가지지만 본인이 다양한 영화를 하기 위해서 그래야 할 때가 있거든. 자기가 이 작품 해봐야겠다, 하면 주저없이 할 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난 내가 결정하면 되지만, 매니지먼트가 있으면 그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고. 돈문제 얘기하는 거 참 어려워. 개런티 책정할 때, 서로 웃으면서 어떻게 하죠? 글쎄 말이에요. 나야 많이 주면 좋지 뭐, 이러고, 글쎄 저희도 많이 드리면 좋겠는데요, 이러면서 시간이, 어색한 시간이 한 30분은 흐르거든. 그럴 땐 매니저가 있으면 좋겠지. 더 많이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돈 얘기를 안 해도 되니까. 그러고 있으면 내가 정말 돈 벌려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확 드니깐 이상해지는 마음 있잖아요.

-<흑수선>의 배창호 감독과는 가장 많은 영화를 찍었고, 너무나 잘 아는 사이라 느낌도 남다를 텐데요.

=아마 유례없을 거야. 12편을 같이한 감독과 배우. 난 이 작품 저 작품 했지만 배 감독은 나랑 12편 쫙 같이했다는 건 기록일 거 같아. 매번 서로 어떤 새로움을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더 좋다는 느낌이 들어요. 배 감독은 영화에 아주 푹 빠져 있는 사람이거든. 연세대 상대 나와서 현대 지사장으로 케냐에 갔을 때부터 영화한다고, 결국 이장호 감독한테 편지 보내고, 무조건 사표내고 들어와서 조감독 한 거니까. 영화에 대한 열정이 굉장하고, 이른바 제도권영화를 거의 10년 하고나서도 자기의 독립영화스타일로 계속한다는 게 참 좋아. 보통 좀 힘들면 다른 일을 잠깐 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고 영화만 계속한다는 건 공력이 무지 쌓여 있다고 봐. 우리 영화계에는 어른들이 별로 없잖아요. 감독으로선 50대가 왕성한 때 같은데, 별로 없지. 배 감독, 장선우, 이명세, 박광수 이런 사람들이 굳건히 자리매김을 하고 50대, 60대까지 꾸준히 하면 좋을 것 같아.

-데뷔부터는 44년, 성인연기부터 하면 21년 동안 연기를 해왔는데, 아직도 못해본 것,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게 있으세요.

=다 해봤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직도 할 게 많은 것 같아. 뭐가 있을까는 잘 모르겠어. 인물들이라는 게 얼마나 변화무쌍한데 그 속을 어떻게 알 것이며, 같은 인물이 어떻게 있을 수가 있나.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

(안성기 선배님, 오래 오래 영화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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