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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의 원작과는 전혀 다른 변주곡, <아파트>
김도훈 2006-07-04

안병기 감독의 네 번째 공포영화 <아파트>는 강풀의 원작과는 전혀 다른 변주곡이다. <미스테리 심리 썰렁물>(이하 <미심썰>)이라는 원제를 지닌 강풀의 원작은 다중 시점과 인터넷 스크롤을 적절하게 활용한 인터넷 시대의 산물이었다. 1시간30분짜리 상업영화로 변환하는 것이 태생적으로 까다로운 매체인 것이다. 안병기 감독이 택한 방법은 <미심썰>의 기본적인 설정을 유지한 채 한국형 호러영화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여전히 열쇠는 밤 9시56분이다. 아파트의 불이 동시에 꺼지면 다음날 사람이 죽어나간다. 다만 이 괴이한 죽음의 법칙을 알아차린 사람은 건너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커리어우먼 세진(고소영)이다. 그녀는 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녀 유연(장희진)을 비롯한 건너편 아파트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하지만 관음증 환자로 추궁당한다. 머리를 풀어헤친 원혼은 계속해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마침내 세진은 오래전 아파트에서 벌어진 자살사건이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열쇠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심썰>이 인기를 얻었던 이유는 효과적으로 재단된 미스터리의 구조 덕이었다. 얽히고설킨 줄을 조금씩 풀어나가는 재미였던 것이다. 이를 한국형 공포영화의 세계 속으로 삽입하는 과정에서 원작의 장점은 희석되어버린 느낌이다. 죽음의 비밀을 풀어나가고 캐릭터에 충분한 성격을 부여할 만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신 감독은 시끄러운 극적 장치들을 전작보다 줄이고 은둔형 외톨이나 장애인에 대한 학대 등 현대사회의 병폐를 공들여 묘사한다. 원혼과 관객 사이의 감정선을 이어내려는 시도지만 논리적인 허술함을 안은 이야기가 황급히 진행되는 탓에 극적인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의 선이 팽팽하지 못하다. 줄이 느슨해지면 자연히 비명소리도 줄어든다.

오히려 가장 섬뜩한 장면은 서서히 베란다로 걸어나와 느닷없이 뛰어내리는 남자를 세진이 망원경으로 쳐다보는 순간이다. 별다른 사운드도 입혀지지 않은 채 금세 지나가는 이 장면은 구로사와 기요시의 그림자를 아주 잠시나마 연상시킨다. 머리를 풀어헤친 원혼의 눈빛으로 호소하는 대신 그런 현대적 삶의 무표정한 섬뜩함에 집중했더라면 <아파트>는 안병기 감독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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