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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군, 결국 밝혀진 <수퍼맨 리턴즈>의 장르적 정체에 지루해하다

SF를 빙자했으나 코미디였다네

대체 다들 한번 웃어보자고 만든 건지, 아니면 범우주적 메시지를 진지하게 전하고자 만든 건지가 도무지 파악되지 않는, 미묘하고도 애매한 설정들을 도처에 깔아두는 고도의 기법을 통하여 자신의 장르적 정체를 무려 28년 동안 감춰왔던 영화 <슈퍼맨>. 멀쩡하게 생긴 근육맨이 퍼렁 스판 위에 뻘겅 빤쓰를 걸치고 거리를 활보하는 당 영화의 장르는, 그렇다, SF와 코미디의 경계선 어디선가 방황을 일삼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고향인 크립톤 행성에서 근 20년 만에 귀환한 <슈퍼맨>은, 실로 늠름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선, <슈퍼맨> 시리즈라면 한번 등장해주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여객기 육탄구조’ 장면에서 그 첫 번째 베일은 벗겨진다. 평소의 광속비행 실력이라면 충분히 1초 내에 구출할 수도 있었던 추락 여객기를, 날개 한짝씩 잘라가며 대단히 아슬아슬한 필로, 그것도 수많은 군중이 운집해 있는 장소를 굳이 택하여 구해내는 슈퍼맨. 네편의 시리즈를 통해 닦아온 자기 연출력을 십분 발휘하는 그의 노련함에 채 감탄하기도 전, 그는 방심하고 있던 관객을 향하여 결정타 한방을 냅다 날려준다. “자 여러분,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해서 비행기를 무서워하지 마세요. 사실 비행기야말로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죠.”

코오… 행성간 교신용 안테나로 추정되는 앞머리 한올 외에는 어떠한 흐트러짐도 없어 혹 헬멧이 아닐까 하는 의혹마저 불러일으키는 금발 깻잎머리를 빛내며, 나지막이 읊조렸던 그의 이 항공여객업중앙협의회적 발언은, <슈퍼맨>의 장르적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실마리가 된다.

그리고 미침내, 28년 전과 같이 부동산업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간직하고 있는 나쁜 놈 ‘렉스 루더’의 생산적 부동산 시장질서 교란행위(그게 뭐냐고. 영화를 보시면 안다)를 강력 단속하던 슈퍼맨이, 공무수행 끝에 장렬히 전사… 하지는 않고 병원으로 후송되면서 영화는 드디어 자신의 정체를 명확하게 드러내게 된다. 언제나 그러하듯, 한순간 스치듯 지나가는 장면을 통해서 말이다.

대기권 밖으로 렉스 루더의 야망을 날려버린 뒤 지상으로 추락, 혼수상태에 빠진 슈퍼맨을 구해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가장 먼저 취해진 의료적 조치는 물론, 주사를 놓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주삿바늘은, 모두들 짐작하시듯, 슈퍼맨의 피부를 뚫는 일에 실패한 채, 오뉴월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일대 굴욕을 겪고 만다. 그리고 바로 이 주삿바늘의 굴욕이야말로 지금까지 <슈퍼맨>을 둘러싼 모든 장르적 의혹을 일거에 해소해준 열쇠였다.

그랬다. <슈퍼맨> 시리즈의 장르는, 무려 28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진지한 SF를 빙자한 진지한 코미디’로 밝혀졌던 바, 오로지 이것만이 지루해터진 영화 <수퍼맨 리턴즈>로부터 필자가 건질 수 있었던 최대의 그리고 유일한 소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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