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커버스타
퍼덕퍼덕, 새는 알을 깨고 날개짓한다, <무사>의 정우성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나”는 질문에 “‘규칙적’이 아니라 ‘꾸준히’ 한다”며 질문을 정정하고, “멜로가 약한 것 아니야”는 지적에는 “그 전쟁판에 무슨 멜로냐, 멜로가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딱 잘라 대꾸한다. “아쉬운 장면…” 하는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나도 아쉬운 것 없다. 디렉터스컷도 없다. 지금 편집되어 극장에 걸리는 2시간37분짜리 <무사>가 진짜고 완결판이다. 다른 건 없다”는 대답이 화살처럼 날아왔다. 정우성은 그랬다. 매끈하고 유연한 처세보다 하고 싶고 해야 하는 말들만 가슴속에 꽉 채우고 있는, 연정을 느끼는 여인을 지키는 방법으로 “살려주자”는 애원 대신 “우리 손으로 죽이자”며 소리지르는, 정우성은 그렇게 여솔이었다.

“여솔에겐 노비근성이 있다. 주인이 죽고난 뒤 그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비록 자유인의 신분이 되었지만 자유롭지 못하다. 누군가를 지켜주어야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노비근성. 그는 끊임없이 대체주인을 찾았고, 그때 부용이 나타난 거다.” 한 인간에 대한 진심의 경의를 뜻하는 단어라면, 정우성, 그에게도 ‘노비근성’이 있다. 한번 믿음과 정을 준 사람에게 끝없는 신의를 바치고 연기를 바치고, 열정을 바친다. 7년 넘게 사귀어온 여자친구가 그렇고 김성수 감독이 그렇다. 정우성에게 김성수는 이지헌이고 부용 공주다. “감독과 배우의 관계를 넘어선, 형이면서 친구다. 띠동갑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진짜 의견과 마음을 나누는 친구. 서로가 원하고, 서로에게 가장 잘 맞는다.” 누군가 그를 ‘주변사람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 배우’라고 했다. 최민수와 있는 정우성은 뒤로 약간 기댄 자세로 진지하고 철학적인 대답을 던지지만, 안성기와 함께 있는 정우성은 얌전하고 예의바른 소년 같다. “늘 상대적으로 사람을 대하기 때문일 거다. 될 수 있는 한 상대편에게 맞추면서 작업하는 편이고, 글쎄 어떻게 보일진 모르지만 난 그런 게 편하다.” 하긴, <비트>의 민이도 로미가 10만원에 사들인 ‘노예’가 아니었던가.

정우성에게는 일상의 느낌이 없다. 그가 아무리 많은 광고를 찍어낸다 한들 ‘정우성의 하루’ 같은 이야기는 인터넷을 헤엄칠 리 없다. 아이 4명 딸린 실직가장의 어깨가 저 조각 같은 어깨 위에 겹쳐질 리 만무하고, 반칙왕을 꿈꾸는 소심한 은행원을 담기엔 저 눈은 부담스러울 만큼 아름답다. <비트> 이후 트레이드마트가 된 반항적이면서 외로운 이미지는 그를 가두는 틀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무사>에서도 “시나리오 읽고 니가 하고 싶은 걸 골라봐라, 그렇지만 너는 여솔이다”라는 김성수 감독의 말이 마치 마법사의 주문처럼 그를 가두었고 그는 “최정에 대한 욕심이 생겼지만 내 운명은 여솔임을 알았다”고 했다. “일상이 느껴지지 않는 내 이미지는 어떻게 보면 단점일 수도 있겠지만, 나만이 가진 큰 색깔이고 다른 배우가 못 가진 장점일 수도 있다. 물론 이제는 조금씩 일상의 느낌을 부여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 하지만 자꾸 변신하고 탈바꿈하는 데 신경쓰다보면 어느새 본연의 이미지조차 흐려질 수도 있지 않나.”

제임스 딘은 박제를 풀지 못한 채 죽었다. 그러나 정우성은 살아 있다. 요즘 그는 공식적인 자리에 수염을 안 깎은 채로 나타나거나, 멋진 윙크 대신 한없이 망가짐에 가까운 몸짓으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자연스러워서 편하다. 어릴 때는 폼만 잡으려고 했던 것 같다. 이젠 그게 멋있는 것의 전부는 아니란 걸 알았다.” 여전히 지면에는 그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미문이 넘쳐나고, 곁눈질로 그를 꿈꾸었던 부용 공주처럼 수많은 여성들이 그의 사랑을 꿈꾼다. 하지만 사랑은 그런 게 아니다. 이제, 미소년 정우성을 놓아줄 때가 온 거다.

<구미호>의 정우성과 <무사>의 정우성

예전의 나는 영화라는 ‘신기루’를 잡겠다고 뛰어다니던 철부지 소년이었다. 지금의 나는 영화라는 것에 대한 이해도 있고, 연기에 대한 지식도 있으며, 그것을 실전에서 구사하는 방법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절대 바뀔 수도 없고 바뀌어서도 안 되는 건, 영화를 대하는 진지한 자세와 영화를 소중히 다루는 마음이다.

장쯔이와 정우성

친했다. 장쯔이는 기초 트레이닝이 잘되어 있는 배우이고 힘든 촬영을 의연하게 잘 이겨냈다. 촬영 끝나고 장쯔이와의 사이에 대한 이런저런 가사들이 나오긴 했는데 아마 실제보다 더 좋아 보였던 모양들이다. 또 시사를 본 사람들이 영화 속 몇몇 장면이 그와 찍은 음료광고와 겹쳐진다는 말을 하던데 어쩔 수 없다. 내가 안고 가야 할 핸디캡이다.

감독 정우성

요즘 그 질문이 제일 부담스럽다. 그저 나는 ‘꿈’을 말했는데, 어느순간 ‘선언’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나는 감독이 되고 싶다거나 배우로 남겠다 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그러나 그림의 대상이 아니라 붓을 들고 직접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