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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에만 집착하는 공포, <D-day: 어느날 갑자기 세번째 이야기>
김수경 2006-08-01

근대 이전의 감옥은 정거장이었다. 처형을 기다리는 사람이 잠시 머무는 장소. 그러나 현대의 감옥은 순수하게 감금을 위한 곳이다. <D-day: 어느날 갑자기 세번째 이야기>는 입시를 이유로 여학생들을 감금한 기숙학원의 ‘감시와 처벌’을 그려낸다. 미셸 푸코의 말처럼 ‘모든 동료는 감시자’로 변하고 판옵티콘(죄수를 감시하는 원형 감시탑)의 간수처럼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그들을 훔쳐본다. 자물쇠와 칙칙한 단체복에 포박당한 소녀들은 영문도 모른 채 미치고, 토하고, 피 흘리며, 목을 맨다. 보람(이은성)이 사감에게 뺏긴 <눈먼 자들의 도시>를 휘저은 전염병처럼 불안은 소녀들 속으로 파고든다. 여학생 전용 기숙학원. 재수생 보람, 유진(유주희), 은수(김리나), 다영(허진용)은 같은 방에 배정받는다. 사사건건 사감과 다투던 유진은 선생들에게 암묵적인 괴롭힘을 당하고 아이들에게도 문제아로 각인된다. 환영을 보던 유진은 구급차에 실려 학원을 떠난다. 엄마의 강요에 의해 학원에 다시 맡겨진 유진은 결국 자살한다. 그 뒤, 잦은 악몽에 시달리던 은수는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며 이상한 행동을 거듭한다. 수능시험을 3일 앞두고 학생들이 모두 퇴실하는 날, 학원에서는 대참사가 발생한다.

<D-day…>는 스트레스로 가득 찬 기숙학원이라는 공포에 적합한 폐쇄공간을 제대로 활용치 못한다. 시간의 변화가 드러나지 않는 단조로운 앵글과 컷으로 인해 공간과 인물은 평면화되고, 드라마의 긴장감은 부실해진다. 더미(인공적으로 만든 시체)를 사용해 스펙터클을 강조하는 장면은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오히려 교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선생의 목소리가 찢어지는 파열음으로 변하는 대목이나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와 지하철의 경고음을 겹치게 하는 방식으로 사운드는 효과적으로 사용됐다. <D-day…>는 시각을 중심으로 한 공포의 ‘효과’에만 집착할 뿐 공포가 발생하는 정서적 ‘원인’을 담아내지 못한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야 할 기숙학원에 원혼이 서린 사연은 원장과 사감의 짧은 대화와 뉴스를 통해 스치듯 언급될 뿐이다. 무수한 시체들과 천정에서 쏟아지는 피벼락보다는 등장인물의 상황과 내면이 드러나는 소박한 디테일이 필요했다. 은수가 친구들에게 정리노트를 빌려줬을 때, 보람이 그것을 일기장에서 비유했던 표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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