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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감정에 대한 치밀한 통찰, <유레루>
김나형 2006-08-08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은 타케루(오다기리 조)는 형 미노루(가가와 데루유키), 어릴 적 이웃이었던 치에코(마키 요코)와 계곡에 놀러간다. 가파른 계곡에 걸린 다리 위에 서 있던 치에코가 계곡 아래로 추락한다. 타케루는 멀리서 진실을 보았다. 관객은 그가 목격한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리 위에 같이 있던 미노루는 치에코를 밀어 떨어뜨렸을까, 아니면 구하려 했을까. 동생은 무조건 형을 보호하려 하지만 형은 자신이 치에코를 죽였다고 경찰에 자수한다. 누가 봐도 정직하고 희생적인 인간이었던 미노루는 재판이 진행되어감에 따라 뻔뻔하고 자기방어적인 면모를 보인다. 증오심을 드러내며 냉소적인 말을 내뱉는 형을 보면서 동생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종반까지 밝혀지지 않는 사건의 진위를 둘러싸고 상황이 시소처럼 오르내린다. 그러나 <유레루>는 ‘본격 법정 심리 반전 미스터리’류의 영화는 아니다. 짜임은 단단하지만 사건은 단 하나뿐. 영화를 지탱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형과 동생’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인간관계, 그리고 그들 무의식에 숨겨진 애증의 감정이다. 재주 많고 매력적인 동생은 저 하고 싶은 대로 분방하게 살아왔다. 일찌감치 고향을 떠 성공한 사진작가가 됐지만, 비뚤어지고 무책임하다. 동생이 버리고 간 것을 보살피는 건 언제나 형이다. 시골 구석에서, 가업을 이어받아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완고한 아버지를 보살피며 평범한 생활을 해왔다. 보잘것없는 얼굴에 누구에게나 미소를 보이면서. 그런 형제의 가슴에 계곡에서의 사건이 파동을 일으킨다. ‘흔들리다’라는 뜻의 제목처럼, 파동은 이들이 평소 숨겨놓았던 선망과 질투, 모멸과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며 크게 요동친다.

미노루와 타케루가 형이고 동생이어서 그렇게 살아온 것은 아닐 터다. 그들은 그런 성격으로 태어났다. 그뿐이다. 그러나 뱃속 깊이 웅크린 애증의 감정은 서로 버리려야 버릴 수 없는 가족이기에 터져나온다. 너무 잔잔해서 지루할 수 있는 영화를 힘있게 만드는 것은 관계와 감정에 대한 치밀한 통찰이다. 감독의 시선은 소름이 돋을 만큼 정밀하며 가가와 데루유키, 오다기리 조 두 배우는 형제의 감정을 한치의 버림없이 담아낸다. 각신에 꼭 맞는 음악을 꽂아넣는 일본 밴드 컬리플라워스의 감수성도 묵직한 여운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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