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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몸에 새긴 주홍글씨
2001-02-16

남성우월주의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쿠카이 광고 시리즈

광고주: Kookai 제작사: CLM/BBDO, Paris

아티스트: Bernard Guillon 제작연도: 2000년

쿠카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캐주얼 브랜드이다. 프랑스의 한 일간지에 따르면 이 브랜드의 파워는 그 나라의 여성부 장관을 능가한다고 한다. 여성의 권익향상에 그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브랜드라는 얘기다. 그런 여성해방 전쟁에 동원된 고성능 병기는 광고였다. 쿠카이가 고집스럽게 들고 가는 광고컨셉은 ‘여자 기살리기’이다. 천년의 획을 새로 그으면서도 절대 변하지 않고 그런 메시지는 일관성을 지켜가고 있다. 집요한 자세로 남성의 권위와 힘에 맞서서 여성우월을 부르짖은 덕분에 이제 쿠카이는 패미니즘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 여성패션 브랜드 쿠카이 광고가 달라지고 있다. 그림이 달라지고 이미지가 달라지고 충격의 정도가 더 강해지고 있다. 마치 간음한 여자 헤스터에게 남겨진 주홍글씨처럼 남자의 육체를 벌하고 있는 징그러운 상채기들. 더이상의 설명도 없고 제품을 연상시키는 시각단서도 따로 없다. 광고를 보는 사람의 반응도 제각각일 것이다. 도대체 주장하는 바가 뭐야? 이 끔찍한 이미지가 도대체 브랜드에 도움이 되기나 하는 걸까? 쿠카이와 이 그림은 도무지 무슨 상관관계가 있단 말인지? 오만무례하고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광고다.

이 광고의 메시지를 해독하는 실마리는 로고마크에 있었다. 남자의 몸을 향해 벼락을 치는 형태의 브랜드 마크를 사람들은 익히 기억하고 있다. 그 마크가 이번 광고에는 빠져 있다. 군더더기로 여겨 과감하게 날려버렸다. 대신 쿠카이라는 로고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마는 극단적 미니멀리즘을 이 광고는 채택하고 있다. 마치 나이키가 로고없이 갈퀴 모양의 마크만으로 얼굴을 대신하듯이….

뉴 캠페인의 연작광고를 구성하는 광고사진을 보면 아티스트들의 고민이 역력하다. ‘여자들 기를 살려주는 또다른 방법은 없을까? 좀더 엽기적인 방법으로 남자들을 공격하는 비주얼 전략은 없을까? 남자들을 더 진하게 골탕 먹이는 뾰족한 수가 있을 텐데…. 지금까지 남자들이 행사해 오던 권위, 오만, 가부장적 지위, 독선, 제도적 특권 따위에 철퇴를 가하는 거야.’ 그런 고민 끝에 남자들을 향해 잔혹한 저주의 징벌을 가하고 있다. 로고에 담겨 있는 ‘벼락맞는 남자’를 아예 표현소재로 끌어올렸다. 남자들의 벌거벗은 몸에 칼자국을 내기도 하고 불에 덴 상처를 남기거나 징그러운 벌레가 할퀸 흔적을 남기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세상 모든 여자들의 통쾌한 복수가 체화된 남성학대의 징표가 비주얼의 전부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듯 상처받을 사내들. 그들의 자존심이 이 광고의 공격목표였다. 그것을 위해 아티스트는 페미니즘의 날이 시퍼렇게 선 비수를 남성우월주의의 심장에다 꽂아버린 것이다. 그 의도가 너무 섬뜩해서 거부감이 들 정도다. 꼭 이렇게 살벌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만큼 아직도 여자는 약한 존재인가? 여자의 자존심이나 정체성은 꼭 남성과의 대결을 통해서만 쟁취되는 것인가? 아무리 페미니즘이라는 미사여구를 들이댄다 해도 상처는 흉터를 남기고 마는 법이다. 언뜻 보기엔 단순무식해 보이는 사진이지만 이 그림에는 수천년의 성대결 역사가 담겨 있다. 여자를 억압해온 온갖 굴레와 차별에 대한 무언의 항변이 웅변으로 뿜어지고 있는 듯하다.

표현의 관점에서는 패션광고가 이래야 한다고 하는 인식의 굴레들이 박살나고 있다. 감성과 무드, 터치, 스타일, 매너가 송두리째 부정되고 있다. 한편 한편이 마치 패션광고의 성역에 도전하는 듯한 반항이요 실험이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브랜드의 인지강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과 은밀한 계산을 들춰낼 수도 있음직하다.

이 광고가 수용자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또 하나의 메커니즘은 상징(symbol)이다. 굳이 카시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은 상징의 동물 아닌가? 상징은 많은 사람이 같은 목적을 향해 가는 것을 가능케 한다. 깃발이나 해머나 낫과 같은 상징들이 정치적으로 발휘한 가공할 영향력을 생각해 보라. 마케팅전장에서 소비자라는 목표를 공략하기 위해 수많은 광고인들이 동원한 무기들 중에 상징만큼 강력한 것도 없었다. 상징은 언어와는 달리 특정한 경험이나 분석에 의존하지 않고도 소통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매에 도움이 되는 수많은 소비자 심리와 시장분석 자료가 이 상징에 응축돼 담겨 있다. 상징은 이미지 하나로 소비자의 가슴에 불도장을 찍는 교묘한 각인(imprinting) 장치다.

그러나 상징은 그만큼 위험하고 불완전한 시각요소이다. 발신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엄청나게 왜곡되어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슬로건조차 융해돼 자취를 감춘 광고. 문자언어를 과감하게 포기해 버리고 전적으로 시각언어로 승부를 건 쿠카이 광고는 스스로 수용자의 오해를 자초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현우/ 제일기획 제작국장·광고 칼럼니스트2nu@che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