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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만의 연출력을 확인시켜주는 작품, <마이애미 바이스>

마이클 만은 매력적인 범죄자를 중심으로 하여 그와 대립하는 인물을 그 반대편에 위치시킨 뒤, 이들의 관계가 심리적 동질감에 서서히 물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실패한 남성의 낭만적 정서를 영화 속에 새겨놓곤 한다. 형사 반장과 은행 갱단 우두머리간의 관계(<히트>)에서 시작해서, 담배 회사의 내부 고발자와 그것을 공론화하려는 방송국 PD(<인사이더>), 살인청부업자와 이를 저지하려는 택시기사(<콜래트럴>)에 이르기까지, 두 남성간의 팽팽한 심리적 대결과 그 속에서 은밀히 공유되는 동질감은 마이클 만 영화의 피할 수 없는 매력이다. 하지만 마이클 만의 신작인 <마이애미 바이스>는 그 주인공이 범죄자가 아닌 정의감에 불타는 두 경찰이라는 것, 그리고 스펙터클의 전시를 위해 서사적 시간을 제약해야 하는 블록버스터임을 감안할 때, 전작들이 주었던 매력적인 인물 관계를 기대하기란 애초에 무리일지 모른다.

<마이애미 바이스>의 리코(제이미 폭스)와 소니(콜린 파렐)는 범죄조직을 수사하던 중 정보원 가족이 몰살당하는 사건을 겪는다. 리코와 소니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그 조직에 잠입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마약을 운반하는 조직의 일원으로 위장하여 조직의 실체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대조적인 성격의 두 사람이 상보적으로 협조하며 사건을 해결해가는 것이 경찰 버디영화의 전형적 관습이라면, 지적이고 냉정한 판단력을 지닌 리코와 다혈질의 성격으로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소니의 관계 역시 이러한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이 작품이 80년대 동명의 TV시리즈의 리메이크인 이상 당연한 결과이다). 결국 이 둘의 관계가 전형성에 머문다면 <마이애미 바이스>는 이들이 조직 속으로 들어가면서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에 그 성패가 달려 있게 마련이다. 즉 <페이스 오프>가 적절하게 보여주었듯이, 형사가 범죄조직에 침투한 뒤 자신이 경멸했던 조직의 일부가 될 때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이야말로 영화의 매력이 발산되어야 하는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이다(마이클 만 역시 이와 유사한 영화의 목적을 이야기한 바 있다). 이를 위해 마이클 만이 설정한 것은 소니와 조직 보스의 여인인 이사벨라(공리)간의 ‘치명적 관계’이다. 동양 여성의 이국적 분위기에 주로 의존하면서, 빈둥거리며 돈만 써대는 상투적인 조직의 여인이 아닌 커리어우먼의 분위기가 곁들여진 이사벨라는 꽤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그것이 두 사람의 우연한 로맨스를 설득력있게 하지는 못한다. 두 사람의 로맨스가 겉도는 이상, 그 서사의 진동이 도덕적 이분법의 경계가 무너지고 직업적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소니의 내면으로까지 전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직업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는 남성 인물(<히트>의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매혹된 것도 이 때문이었고, <콜래트럴>의 살인청부업자는 직업적 목표를 위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터미네이터형 일중독자에 가깝다)의 실패에서 발생하는 페이소스를 도시의 낭만성으로 포장하는 마이클 만 영화의 특징을 고려한다면, <마이애미 바이스>의 마이애미는 매혹적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시각적 전시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두 주인공 중 하나인 맥스(제이미 폭스)의 직업을 택시기사로 설정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콜래트럴>은 LA의 지정학(geopolitics)을 탐구하는 ‘도시의 오디세이’였다. 하지만 <마이애미 바이스>의 마이애미는 그것이 영화적 배경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데, 이는 무엇보다 제목과 달리 마이애미라는 도시 속에 악(vice)이 제대로 섞여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콜래트럴>의 엔딩에서 도시적 삶을 그토록 경멸했던, 그럼으로써 자신의 살인 행위를 정당화했던 빈센트(톰 크루즈)는 결국 그 도시적 삶의 일부가 되어 지하철에 실려 사라진다. LA라는 거대 도시는 적대자마저도 자신의 일부로 삼투함으로써 더욱 매력적으로 변모하는 모순적 공간인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마이애미 바이스>와 <콜래트럴>의 도시의 이미지는 유사한 기능을 담당하면서도 질적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하지만 <마이애미 바이스>는 이러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표면적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장인으로서의 마이클 만의 연출력을 확인시켜주는 작품이다. 스티브 소더버그가 디지털 매체를 통해 장르적 컨벤션을 앞세우는 일련의 영화와 구별되는 실험성을 중요시한 반면, 마이클 만은 장르영화의 틀 안에서 ‘표면적 리얼리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를 활용하고자 한다. 도시 야경의 질감을 담아내는 HD카메라의 능력이야 <콜래트럴>에서 이미 확인시켜준 바 있지만, 영화의 마지막 총격장면만큼은 HD카메라의 기술력을 한층 성숙시킨 대표적인 장면이다. 방송 뉴스를 통해 실제의 시가전(市街戰)을 보는 것보다 더 강력한 충격을 던져주는 이 장면은 기존의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리얼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며, 이전까지 다소 실망스럽던 <마이애미 바이스>를 순식간에 매력적인 영화로 둔갑시키기에 충분하다. 현실적 경험이 영화적 경험의 충격을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말하는 것은 이제 상투적 지적에 지나지 않는다. 고통의 순간을 길게 늘림으로써 그 고통의 질감을 또렷하게 표현하려 했던 샘 페킨파의 전략이 오히려 ‘고통없는 고통의 미학적 코드’가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에서, <마이애미 바이스>의 이 마지막 총격장면은 우리가 고통마저도 해부학적으로 즐길 수 있는 시대로 들어섰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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