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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여성이 만들어내는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 <나인 라이브즈>
이다혜 2006-08-22

누구나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을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아끼는 사람의 죽음 혹은 재회나 방문…. 잊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시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흘러간다. <나인 라이브즈>는 다른 사람들은 스쳐보내고 마는 작은 순간들이 이루는 거대한 우주를 끌어안고 삶을 살아가는 아홉 여성이 만들어내는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다이애나(로빈 라이트 펜)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다. 임신 중인 다이애나는 옛 연인 데이미안(제이슨 아이작스)을 우연히 만난다.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별볼일 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각자 장보기를 계속하는데 데이미안이 그녀에게 다가온다. 그렇게 과거가 서서히 되살아난다. 겨우 몇분 사이에 오랫동안 쌓아온 안온한 삶에 균열이 생긴다. 원치 않은 일이지만, 막을 수 없다. 데이미안과 아내 로라가 새로 산 집에 소니아(홀리 헌터)가 찾아온다. 소니아는 방 구경에만 한참 시간이 걸리는 멋진 로라의 집을 구경하고 잡담을 한다. 두 부부가 마주앉아 건배를 하는데, 소니아와 남편 마틴이 말다툼을 시작한다. 매기(글렌 클로스)는 딸 마리아(다코타 패닝)와 묘지를 가로질러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묘지 앞에 자리를 펴고 앉는다. 마리아는 즐겁게 수다를 떤다. 매기는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고 마리아는 아무 말 없이 엄마가 베고 누울 수 있도록 다리를 빌려준다. <나인 라이브즈>는 이렇게 아홉 여인의 삶을 차례로 보여준다. 그들은 전남편의 아내 장례식에 가기도 하고, 악몽 같은 유년기를 선사했던 아버지의 집에 오랜만에 찾아가기도 하며, 암으로 투병하며 남편에게 짜증을 쏟아내기도 한다. 달이 뜨는 곳에라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삶의 편린들이다.

<나인 라이브즈>의 매력은, 특별한 순간을 편집해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들이 살면서 겪은 한순간을 12분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여과없이 보여준다는 데 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호연을 보여주는 배우들에 효과적으로 쓰인 클로즈업은 숨기고 싶지만 숨겨지지 않는 깊은 슬픔과 가녀린 떨림을 포착한다. 그들은 다른 주인공들과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총을 입에 물고 죽겠다고 아우성치던 여인이 다른 이야기에서는 간호사로 정상적이고 기능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 <숏컷>에서처럼 이들이 모두 모여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대단원은 없다. 결국 모두 각자의 짐을 짊어져야 하고 남들이 보기에 평온한 삶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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