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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양, <유레루>의 오다기리 조를 보고 반하다

그놈은 멋있었다

<유레루>에 대해 도쿄의 김영희 기자가 <씨네21> 블로그에 쓴 글에 십분 공감한다. “아니, 저 정도로 동생이 생기면 당연히 형이라도 열받지 않겠어?”

<유레루>를 보기 전까지 사람들이 거품 무는 오다기리 조가 그렇게 멋있는 줄 몰랐다. <피와 뼈>에서는 지나치게 마른 몸 때문에 빈티가 흘렀던 게 사실이고, 뭐 <박치기!>나 <메종 드 히미코>에서도 차라리 만만한 ‘훈남’형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아~~ 자주색 나팔바지에서 구형 포드 자동차까지 초절정 빈티지 스타일로 짜잔 나타났을 때야 비로소 나는 그의 진가를 알아보게 된 것이다. 이건 너무 멋있잖아? 이 정도로 멋있는 사람이 좀 이기적이면 어떤가. 그에게 훌륭한 인간성을 바라는 건 아인슈타인에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왜 되지 못하느냐고 다그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나.

그래서 캐스팅이 이 영화의 치명적인 결함이라는 건 아니다. <유레루>는 최근 본 일본영화 가운데 최고라고 할 만큼 멋진 영화였다. 사실 오다기리의 격한 증언이 나올 때까지 이 영화는 ‘최근’이라는 수사를 떼도 무방할 만큼 정교하고 섬세하게 진행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다기리가 반전이라고 불러 마땅한 증언을 하면서 영화는 좀 기우뚱하더니 마지막 7년 뒤 장면에서 영화는 바람 빠진 탱탱볼의 모습을 하고 만다.

물론 미스터리 심리드라마의 외관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자를 죽인 것인지, 사고로 죽은 것인지 밝혀내는 건 이 영화가 가진 궁극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사고인지 타살인지 괄호를 닫아넣은 하나의 죽음을 두고, 두 형제의 진심과 그 진심으로 인해 흔들리는 마음을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관심사다. 그런데 오다기리의 증언이 시작되면서 영화는 비약하고 오히려 죽음의 원인이 핵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한번의 반전인, 7년 뒤 오다기리가 보는 어릴 적 비디오테이프는 영화를 지나친 감상과 도덕적 훈계로 마무리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뒤의 반전은 앞의 반전을 부정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저 착하고 자족하는 줄만 알았던 형이 교도소에서 드러냈던 자신의 진심과 억압된 욕망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살인자로 누명 씌운 동생을 그것도 7년간의 복역 뒤에 만나 용서한다니 그거야말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부처님 뒤토막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개인적으로 결론이야 어떻게 나든 마지막 7년 뒤 장면은 삭제되는 게 훨씬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해가 충분히 되는 건 모두 오다기리 조 때문이다. 멋있는 오다기리 조를 십분 더 보여주겠다는 데 과연 그 유혹을 떨칠 수 있는 여성이 얼마나 되겠나. 영화야 어찌 됐든 정말이지 ‘그놈은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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