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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판 <빌리 엘리어트>, <천하장사 마돈나>
이종도 2006-08-29

김지운에게 웃음의 감각을, 그리고 워킹 타이틀에서 드라마 만듦새를 훔쳐온 뒤 이를 성정치학적 관점에서 재구성한다면 어떻게 될까. 또는 워킹 타이틀이 류덕환을 캐스팅해 동아시아판 <빌리 엘리어트>를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또는 <헤드윅>이 류덕환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천하장사 마돈나>는 여자가 되고 싶은 고등학생이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씨름판에 뛰어든다는 이야기다. ‘천하장사’와 ‘마돈나’를 용접시킨다는 게 신선한데, 그 방식은 이렇게 익히 보아온 장르적 관습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야무진 개성이 돋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천하장사 마돈나>는 적어도 세 가지 장면에서 이들 영화를 뛰어넘는다.

첫 장면은 씨름부 로커에서 감독(백윤식)이 동구(류덕환)에게 샅바를 매주는 장면이다. 햇살이 비스듬히 따뜻하게 사제지간 사이로 내리는데 이렇게 따뜻한 사제지간, 동시에 이렇게 무심한 듯 자애롭게 방목하는 스승은 유례가 없지 않은가 한다. <핑크 플로이드의 벽>에서 소시지를 뽑아내는 식의 또는 군대를 복제한 <말죽거리 잔혹사>식의 삭막한 학교 재현은 현실적이기는 해도 학교가 해방의 공간이 될 수도 있음을 직시하지 못한다. 튀는 레코드판처럼 무한 반복되는 학원물 속에서 이 지점이 독특하다.

두 번째 장면은 동구가 일어 선생(초난강) 앞에서 “저… 선생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을 때까지… 쫌만요”라고 어렵사리 고백하는 장면이다. 힘들게 꺼낸 수줍고 진실된 고백과 그 고백에 대한 대답으로 돌려주는 선생의 나무 교편은 웃기면서도 슬프다. 숭고하고도 지순한 사랑이 완고한 현실의 상징 체계 속에서 어떻게 곡해되고 좌절을 맞는가에 대한 매우 뛰어난 영상적 등가물이다.

유일하게 동구의 꿈을 이해해주는 엄마(이상아)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란다. 동구의 꿈이 세상과 어떻게 대화를 나누는가, 그걸 우리는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첫 장면과 두 번째 장면이 일으키는 충돌의 거센 흐름 속에서 이야기의 힘을 얻는다. 이제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것은 동구가 어떻게 아버지(김윤석)를 뛰어넘는가이다. 완고한 가부장제 안에서 지금의 아이들은 어떻게 꿈을 키우는가에 대해 이해영, 이해준 두 감독은 낯설고 신선한 대답을 들려준다. 이것이 세 번째 장면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완력만을 믿는 마초다. 그는 더 큰 완력 앞에 대들었다가 무너지고 말지만 적어도 자신의 가정 안에선 폭군으로 군림하고자 한다. 동구는 원피스를 입고 나가 아버지의 앞길을 막아서며 자기의 진짜 모습을 봐달라고 한다.

아버지는 내려찍기라도 하듯 포클레인 버킷을 아들의 머리 위에 바싹 들이댄다. 자신도 억압적인 이데올로기의 피해자이면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후대에 물려주는 아버지들에게, 두 감독은 ‘그냥 살고 싶다’는 아들딸들의 커밍아웃을 대신해 들려준다. 살벌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살벌해질 수밖에 없던 권투선수 출신 아버지는 늘 ‘가드 올리고 상대방 주시하고’라며 아들들에게 주문을 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리 가드를 올려도 날아오는 세상의 주먹을 온전히 막아낼 수 없음을 알지 못한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싸움의 문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식 언어로 번역해서 대꾸한다. 폭압적인 아버지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이게 나’라고 말했던 영화가, 그런 딸과 아들이 있었던가.

물론 이 세 장면을 씨줄과 날줄 삼아 섬세하게 엮는다 하여도 자칫 어둡고 칙칙해질 수 있는 성장영화의 운명을 벗어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천하장사도, 마돈나의 꿈도 모두 이룬다고 해도 동구가 걱정하듯 유난히 넓은 발 때문에 훨씬 더 큰 운동화를 신어야 하는 동구의 운명 자체를 발랄한 것으로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두 신인감독은, 함께 쓴 <품행제로> 시나리오에서 보여준 건강한 수다의 전술로 그 운명을 살아볼 만한 운명으로 만든다. <스윙걸즈> 같은 최근 일본의 학원물이나 워킹 타이틀의 <빌리 엘리어트>에서 본 듯한 기시감, 동구가 씨름반 선배에게 씨름 기술을 배울 때 송강호가 얼치기 선배 프로레슬러들에게 교습을 받는 <반칙왕>을 변주하는 듯한 착시감을 홀가분하게 뛰어넘기란 어렵겠지만 말이다. 워킹 타이틀 코미디에서 자주 본, 떼로 몰려다니거나 언제나 곁에 있어서 주인공의 내면을 대신 전해주는 친구들이 분위기를 뒤집어놓는 주역들인데 씨름부 삼인방(문세윤, 김용훈, 윤원석)과 종만(박영서)은 예민한 영화의 분위기를 즐길 만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유별나고 특이한 소수자의 고민을 함께 아파하거나 이해해줄 수 있는 보편적인 고민의 차원으로 밀어올린다.

시나리오에서 영화로 옮기면서 아버지와 엄마 장면이 몇 장면 누락되었는데 더 빠졌어도 좋았을 것이다. 힘을 받을 만하면 아버지와 엄마를 설명하느라 영화는 수다스러워지는데, 이야기의 균형이 자칫 무너질 뻔했다. 솜씨있게 동구의 가정을 그렸다기보다는 ‘가드 올리고 상대방 주시하며’ 가까스로 수비를 잘해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야기꾼 출신 신인감독들이 넘쳐나는 이야기 욕망을 이렇게 절제한다는 것도 쉽지는 않았을 터이지만.

영화를 오롯하게 끌고 가는 건 류덕환의 힘인데, 종만이네 중국집 다락방에서 동구가 붉은 치파오 안에 터질 듯한 몸매를 우겨넣고 ‘나 장만옥 같지 않냐’고 할 때 동구는 장만옥 같지는 않지만 장만옥 못지않게 사랑스럽다. 허벅지를 붙이고 무릎 아래를 벌려 앉거나 새끼손가락을 들고 샅바를 잡을 때, 가슴에 수줍게 붙인 둘리 밴드를 가리려고 할 때 동구는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새로운 매력을 제시한다. 꿈에서 깬 뒤 화장실에서 울면서 팬티를 빨고 있을 때 동구의 등은 조심스레 다가가 안아주고 싶은 그런 등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동구를 다시 만날 때는 참 반가워서 눈가에 물기까지 어린다. 장하다, 해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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