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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왜 산으로 갔지?
2001-02-16

산을 스펙터클의 배경화면으로 써먹은 <버티칼 리미트>

◈ 지금은 지방덩어리를 재료로 한 노쇠한 조형물에 불과하지만, 아줌마도 한때는 히말라야에서 펄펄 나는 알피니스트가 되기를 꿈꾼 적이 있었다. 운동신경 없고 겁 많아서 산악인 되기는 누가 봐도 무망한 노릇이었건만, 마음은 늘 만년설로 뒤덮인 알프스나 히말라야에서 정상의 설원에 발자국을 내고 있었다.

라인홀트 메쓰너, 모리스 엘조그, 리오넬 테레이, 가스통 레뷔파 같은 당시 모든 산악인들의 우상이던 일급 등반가들의, 그 자체로 위대한 문학인 책들은, 산을 향한 아줌마의 꿈을 별빛과 폭풍설에 실어 정상까지 밀어올렸다(모리스 엘조그가 쓴 <성봉 안나푸르나 초등>이 청소년 필독서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 데 아줌마는 지금도 분개하고 있다).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긴 하지만, 산에 가는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해내지 못한 것은 위대한 그들도 아줌마와 마찬가지였는데, 당시 아줌마가 나름대로 둘러댔던 갖가지 이유 중에는 큰 산에 가면 자신도 위대한 그들을 닮을 수 있으리라는 야무진 착각도 들어 있었다.

◈ 어중이떠중이들의 스토리가 다 그렇듯이, 사랑의 눈사태에 휘말리고 결혼이라는 크레바스에 빠져서 구조를 기다리고 어쩌고 하면서 꿈의 백두대간에서 중도하차한 뒤, 히말라야는 아줌마의 삶 속에서 거의 ‘이어도’쯤인 존재로 희미해져갔다. 그래도 나 <클리프 행어> 따위 산을 무대로 한 영화가 나왔다는 소문이 들리면 숨어서 옛 애인을 지켜보는 심정으로 어김없이 찾아보게 되었고, 그때마다 기분이 형편없이 망가져서 돌아오곤 했다. 그들 모두가 산을, 스펙터클을 연출하거나 영웅담을 늘어놓을 적당한 무대쯤으로 취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산은 상상력 부족한 감독들의 도피처가 되어주기 위해 거기 있는 건 아닌데, 말이다. 문학이건 영화건 픽션이라는 장르는 산을 제대로 담기에는 힘부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가, 다큐멘터리보다는 산악인들의 생생한 필치로 기록된 산행기가, 산에서 연출되는 인간심리의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데는 제격이라는 게 아줌마 경험담이다. 인간 드라마를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영화감독들은 왜 산에 간다는 말인가?

아줌마 생각으론, 사람은 산에 가서 산을 본다기보다 제 모습을 보고 돌아온다. 산이 클수록 인간의 왜소함이 두드러지고, 설원이 흴수록 자글자글 끓는 인간의 오장육부를 그대로 비춰내기도 쉬워지는 것이다. 산에 간 인간은, ‘인간 170cm라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을 확인하고 돌아오면 성공인 것이다. 사람들은 제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죽자하고 산을 오르고, 그리곤 ‘두 눈 가득 산을 담아왔노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감독들은 다른 것 같다. 산에 가서, 눈사태나 악천후로 ‘사람 잡는 산의 기술’만을 눈여겨보고 오지 않은 다음에야, 산악영화들이 그리는 산과 인간의 관계가 왜 이리 한결같단 말인가.

산도 산 나름이라서, 히말라야 대신 콘크리트 산맥의 저산소지대 한계상황에서 살고 있는 아줌마가 가끔 숨쉬기 위해 찾는 둔덕 같은 북한산도 있고, 톰 크루즈가 곡예등반하며 알통 자랑하는 <미션 임파서블2>의 바위봉우리도 있고, <버티칼 리미트>가 폭력적인 모습으로 그려내는 K2 같은 설산도 있다. 그러나 그중 어느 산이든, 우리가 사는 여기보다는 안전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K2가 아무리 산악인 잡는 험산이라 해도, 지구탄생 이래 그 산에서 죽어간 인명의 수는 열화우라늄탄 한발에 순간적으로 희생되는 사람의 숫자에 훨씬 못 미치며, 고난도 등반 중 사망하거나 다칠 확률은 멀쩡히 잘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에 비해 훨씬 낮은 것이다.

◈ 본론으로 돌아가, <버티칼 리미트>를 상영중인 심야극장. 앞서 말한 바로 그런 산, 제 모습을 비춰주는 산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간, 또다시 재난대행진 묘기대행진의 무대로 변한 산을 확인하고 잘까말까 망설이던 아줌마는, 대신 스스로 제모습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러면 그렇지. K2 정상쯤이야 진작에 올라섰던 아줌마의 꿈은 누가 앞에서 자일을 끊기라도 한 것처럼 곤두박질 추락해서 극장 의자 위에 널부러져 있고, 아줌마 존재의 무게는, 그게 무슨 까마득한 설벽 끝에 걸린 피켈이나 되는 양 팔걸이 하나에 내맡겨져 있지 뭔가. 자기만 그렇다고 인정하기가 억울해진 아줌마, 여전히 졸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새벽 두시의 객석에 바글거리는 인종들은 얼핏 그 두상 하나하나가 금강산 일만이천 암봉의 하나여서 바라볼지언정 접근은 불가능하다 싶은데, 또 달리보면 그들 모두가 K2보다 아득히 높은 코리안드림의 정상을 향하여 서로서로 조를 짜서 자일을 걸다가는 얽히고 설키고 잘리고 자르고 하면서, 살고 죽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아줌마는 그날, 스크린 밖에서 ‘버티칼 리미트’를 감상했다.

최보은/ 아줌마cho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