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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남자, 다시는 만나지 말기를,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김현정 2006-09-05

연아에게. 이런 남자, 다시는 만나지 말기를.

어머니의 갈비집에서 일을 거들며 백수처럼 사는 영운(김승우)은 룸살롱에 다니는 연아(장진영)와 4년째 사귀고 있다. 성격이 불같고 입이 험한 연아는 툭하면 영운과 치고받고 싸우지만, 그를 아끼는 마음은 매우 지극하다. 그러나 영운에겐 참한 약혼녀 수경이 있다. 친구 준용(탁재훈)의 비디오 가게에 모여 소일하는 친구들은 연아만한 여자가 없다고 하고, 영운도 연아가 좋지만, 어머니(선우용녀)를 생각하면 연아와 결혼할 수는 없다. 연아와 앙숙인 룸살롱 전 상무(김상호)의 고자질로 아들의 연애를 알게 된 영운 어머니가 무작정 결혼 날짜를 잡고 혼인신고까지 마치자, 영운은 연아와 연락을 끊고 잠적한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연아가 영운을 유혹하는 첫 만남에서 단번에 4년을 도약하여 동거하다시피하는 오래된 연인의 일상에 내려앉는다. 험한 욕설을 주고받고 레슬링하듯 몸싸움을 벌이다가 섹스로 돌진하는 그들의 연애는 미사여구가 끼어들 여백이 없고, 겉치레에 신경쓸 여유가 없어, 본능과 육체에만 몰두해야 한다. 사랑 외에 다른 무엇, 이를테면 연애의 종착지인 결혼을 염두에 둔다면, 그들의 관계는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로 데뷔한 김해곤 감독은 <파이란>의 시나리오작가였기에 그런 사랑을 끈적끈적하게 그려내리라는 기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만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가 없으면 죽을 것만 같아 끝내지 못하는 사랑, 그 지긋지긋한 악순환을.

이 영화의 몇몇 순간은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기도 한다. 연아가 결혼식 전날 찾아온 영운을 끌어안고 보내주지 못하겠다며 엉엉 우는 장면은 논리적이거나 감정적인 인과와 관계없이 마음으로 공명하게 된다. 그러나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연애영화라기보다 철없는 남자들의 영화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 영화에서 영운과 연아의 연애보다 밀도있는 풍경은 직장에선 딴짓만 하다가 친구들과 술마시며 노는 밤이 되어야 활기를 되찾는 영운의 친구들이 형성한 나태한 공동체다. 여자를 등쳐먹고 패기도 하는 그 남자들은 이 영화에서만은 받아들일 만한 존재로 느껴진다. 게으른 친구들과 막무가내의 연인.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그중 하나에만 몰두했다면 좀더 힘있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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