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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마돈나> <타짜>의 배우 김윤석
이영진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6-09-07

“이젠 연기를 빼고 연기하고 싶다”

<타짜> 현장공개 때의 일이다. 따로 마련된 룸에서 최동훈 감독과의 인터뷰가 있었다. 한 기자가 물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정확하게 옮길 자신은 없지만, 적지 않은 비중의 아귀 역을 김윤석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에게 맡긴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최 감독은 나중에 영화를 보면 이 알려지지 않은 연극 출신 배우의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될 것이라는, 자신에 찬 답변을 내놓았다. 김, 윤, 석, 이라. 그 무시무시한 저력을 맛보는 날은 예상보다 빨리 왔다. 8월31일 개봉한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면 최 감독의 이야기가 허풍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극중 동구 아버지는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10년 넘게 대학로에서 수련하다 느지막이 충무로를 노크한 이 사내. <범죄의 재구성> <시실리 2km>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야수> 등 최근 2년 동안 단역으로 스크린에 얼굴을 내비쳤던 그가 드디어 제 물을 만났다.

-올 여름은 가장 바쁜 시기였을 것 같다. =이젠 좀 한가하다. <천하장사 마돈나>랑 <타짜>도 다 끝났고. 연극 <가을날의 꿈>도 7월30일까지 마쳤다. 지금은 드라마 <있을 때 잘해!>만 찍고 있다. 원래 드라마 섭외받았을 때 거절하려고 했다. 힘들 것 같아서. 근데 주변의 사탕발림에 넘어갔다. 한번 무리를 해보자고 한 건데. 연극 <가을날의 꿈>은 생각했던 것보다 에너지 소모가 많았다. 국내 초연 작품이기도 했고.

-<밤으로의 긴 여로> 이후 4년 만에 무대에 섰다. 공백 때문에 어려움이 크지 않았나. =그것보단 준비가 부족했다. 상대 배우랑 나랑 해석이 다르구나. 무대 위에서 많이 당혹스러웠다. 호흡이 엇갈리니까. 상대 배우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전체적인 틀이 달라서 단시일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창작극이라면 중간에 고치기도 쉽고, 또 고치는 재미가 있는데, 먼 나라 번역극이라 그렇게 하기도 어려웠다. 역시 연극은 충분한 대화와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아침드라마(?) 출연 이후 욕도 좀 먹을 것 같다. 뻔뻔한 인간이라고. 그런 반응들은 이전엔 겪어보지 못한 경험 아닌가. =많이들 알아본다. 식당 가면 아주머니들이 욕도 한마디씩 하고. 극중 하동규라는 인물은 제법 잘나가는 엘리트인데, 좀 골 때린다. 왜 바람 피우는 사람들이 집에서 더 잘한다고 하지 않나. 근데 이 인물은 거짓말하면서 살랑거리지도 않고 대놓고 바람 피운다. 이혼하고 나서는 위자료도 안 주고, 재혼하면서는 전 부인에게 축하해달라고 하고. 기상천외한 놈이다. 작가 선생이 나보고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다고 해서 처음에 설마 했다. 근데 하다 보니까 재밌는 구석이 있더라. 그의 비도덕성이 실은 우리의 비도덕성을 극대화한 것이니까. 연기하면서도 나를, 우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섬뜩했다. 100회가 넘어간다고 하던데, 앞으로 얼마나 더 나쁜 짓을 할지 모르겠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폭력 가장도 만만찮은데. =편집기사가 여자분인데 끔찍하다면서 내가 나온 장면을 많이 걷어낸 것 같다. (웃음)

-첫 촬영 때 소주 한병을 먹고 연기에 몰입하는 바람에 이해영, 이해준 두 감독들이 긴장했다고 하더라. =한병 다 먹은 거 아니다. 물 타서 역한 기운만 느낀 거니까. 근데 미리 말하자면 카메라 앞에서는 아무래도 긴장하게 되니까 알코올도 소용없더라. 재미봤으면 촬영 때마다 계속 마셨겠지.

-동구에게 “가드 올리고∼”라며 윽박지르다 고꾸라지는 그 장면을 보고서 진짜 알코올 중독자인 줄 알았다. =술을 매일 먹는 사람들은 호흡이 굉장히 거칠다. 몸의 기도 모두 흐트러져 있다. 극중 동구 아버지는 센 척하지만 정작 힘없는 존재다. 그 장면 찍을 때 대사도 발음도 필요없다고 봤다. 단 하나. 방 문턱에 어쩌지 못하는 괴물이 떡하고 걸터앉아 있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동구 입장에선 눈엣가시 같은 존재. 그래서 소주까지 동원한 거고.

-감독들도 “윤석 선배 연기가 예상보다 엄청 셌다”고 하더라. =무슨 소리. 시나리오는 더 셌다. 이를테면 후반부에 아버지가 공터에서 동구를 패는 장면을 보고서 엄청 놀랐다. 권투 글러브라도 던져주고, 한판 붙자가 아니잖나. 거의 맨주먹으로 작살을 내놓으니까. 콘티 한번 봐라. 완전히 곤죽을 만든다. 내가 때린 건 약과다. 수건이라도 주먹에 두르겠다고 한 것도 내 아이디어였다. 왜 노가다 하는 사람들이 수건을 목에 두르잖나. 그렇게라도 해야지 싶었다니까. 이런 것도 있을 거다. 감독들이 전형적인 아마추어 복서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해서 권투를 배우면서 스트레이트 위주로 연습했는데, 아마추어 권투는 점수 위주여서 훅보다 스트레이트를 주로 쓴다. 근데 상대가 애다 보니까 훅보다 스트레이트가 더 무섭게 느껴지는 거다. 직선으로 쭉 뻗어서 뻑뻑 소리나게 먹이는 거니까. 보는 사람들도 그럴 테고.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망설였던 장면이 또 있나. =가장 궁금했던 게 왜 에필로그에 아버지가 없을까였다. 덩치들도 있고, 엄마도 있고, 다 있는데 왜 아버지는 없지. 그런데 감독들이 단호하더라. 아버지한테 사라져달라고 말하는 거라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맨 먼저 386이 떠올랐다. 386이 딱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에 낀 세대 아닌가. 나도 386인데, 이를테면 우리 땐 극단에서 포스터 붙이고, 라면 먹으면서, 무대에 섰다.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하면 후배들 다 나간다. 우리가 선배 술시중 든 마지막 세대가 된 거지. 동구 아버지의 상황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었다. 기성세대든, 새로운 세대든, 그 어느 쪽에 편입되지 못하고 시대를 발빠르게 따라잡지도 못해서 윽박지르는. 감독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느낌을 담아보고 싶은 욕심이 추가로 생겼다.

-인물에 대한 연민없이 감정이입은 불가능했을 것 같다. =그 누구든지 24시간 몰래카메라로 아버지의 뒤를 밟는다고 치자.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금세 알 수 있을 거다. 시사회 끝나고 인터넷에 뜬 평들을 좀 봤는데, 무지막지한 아버지지만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더라. 아버지는 동구에게 끊임없이 말하지 않나. “가드 올리고∼.” 가드 올리라는 게 사실은 오지 말라 이거야. 나한테 다가오지 말란 거지. 나를 자세히 보지도 말란 거지. 상대방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날 들키지 않아야 세상으로부터 KO당하지 않는다는 건데. 이게 사실 굉장히 슬픈 자세다. 무서운 세상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은 항상 조그맣게 치켜뜰 수밖에 없는 상태다. 숨는 거지. 무서워서. 그에 비해 동구는 자신만만하게 팔 벌리고 세상을 껴안으려고 하는 거고. 그런 점에서 동구가 아버지보다 훨씬 강하다.

-동구와 아버지, 동구와 덩치들의 이야기가 번갈아 보인다. 한쪽은 어두운, 한쪽은 밝은 이야기다. 감독뿐만 아니라 배우로서도 톤이나 수위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나야 덩치들하고는 한번도 촬영을 안 했으니까. (류)덕환이랑 세트 촬영 들어가는 날 그랬다. “너 이제부터 지옥이다”라고. (웃음) 부산에서 찍을 때는 자기들끼리 술먹고 회먹고 농담하고 재밌게 찍었겠지. 그래서 가끔 전화해서 거기가 천국이라면, 여긴 지옥이라고 겁주고 그랬다. 첫 촬영 때도 덕환이가 첫 테이크에 한마디도 못하겠더라고 하더라. 실제 그런 연기를 했어야 했는데,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면서. 내 입장에선 이 천당과 지옥장면이 섞일 수 있을까 걱정스럽긴 했다. 감독들에게 섞어봤어요? 라고 여러 번 묻기도 했고. 한번은 씨름장에서 덩치들이 모래 장난 하는 장면을 보고는 저렇게 웃기는데 섞일까 싶더라고. 동시녹음 하시는 분이 서로 묘하게 맞아떨어진다고 해서 한시름 놨지만. 나중에 영화 보니까 아버지라는 괴물 때문에 역으로 동구가 얼마나 밝은 얼굴을 하고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아이인지가 더 잘 드러나는 것 같아서 좋았다.

-동구가 립스틱을 바르는 장면을 본 아버지는 그냥 말없이 문을 닫고 나간다. 그런 아들을 봤을 때 다른 식으로 반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시나리오를 봤을 때 가장 맘에 들었던 장면이다. 근데 감독들도 이 장면 찍을 때 그렇게 써놓고서도 확신을 못하겠는지 조언을 구하더라. 충격이야 덜하겠지만, 엄마가 아들의 자위 행위를 봤을 때 어떻게 할까. 그 장면 찍을 때 언젠가 일본책에서 본 내용이 떠올랐다. 어릴 적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하는데 그걸 본 부모가 모르는 척 문을 닫고 나가더라는, 그 아이가 커서 임신을 할 수 없게 되자 결국 가족을 고소한다는 뭐 그런 이야기였는데. 왜 그 부모는 그때 딸의 고통을 외면했을까. 현실이 무서웠던 것이 아닐까. 캐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고. 아버지도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진실들을 대면하기 싫어서 비켜가고 싶은 거라고, 그래서 조용히 나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공터에서 부딪칠 때도 아버지는 동구를 피하지 않나. 그런 아버지를 막아서서 동구는 오늘은 결판 짓자고 하는 거고.

-씨름대회 결승전을 앞두고 아버지와 동구가 만나는 장면은 거의 모든 행동이나 대사가 애드리브 같다. =원래 대본에는 대사가 많았다. 동구에게 “아버지는 네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하는 식의.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이런 대사 못 친다고 했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동구가 빨간 샅바를 매고 있는 걸 보는데, 이게 내 아들 놈인가, 그냥 한번 만져보고 싶더라. 덕환이가 내 진짜 아들은 아닌데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니까. 밥은 먹었나. 밥은 먹고 하는 건가. 눈물이 왈칵 나더라고. 할 말이 없는 거지. 내 주먹에 맞아서 시커멓게 피멍이 들어 있는 아들 놈을 보고 뭐라고 해야 하나. 왜 이산가족들 만나면 아무 말 못하고 울면서 그냥 때리기만 하잖나. 꼭 맞는 비유 같진 않은데. 어쨌든 낯선 장소에서 낯선 아들을 보면서 그제야 내 손안의 자식이 아니구나, 물 가져오라고, 술 가져오라고 심부름 시키던 아들이 아니구나, 다른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구나, 그런 거지. 그래서 “가드 올리라∼”는 말밖엔 못하겠더라. 이겨라라는 대사도 있었는데. 그 말은 안 나오더라고. 스포츠영화도 아니고.

-영화연기를 할 때 현장에서의 느낌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사실 이전의 영화들은 현장 느낌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고. <시실리 2km>에선 애드리브를 많이 할 수 있긴 했는데, 편집이 많이 됐다. <범죄의 재구성>의 이 형사가 맘껏 해본 편인데, 최동훈 감독이 첫날 찍더니 그 뒤엔 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해주더라.

-<타짜>에서도 비중이 큰 아귀 역으로 나오는데. =무엇보다 최동훈 감독과의 작업이 편하다. 배우 기분 좋게 하는 법을 아는 감독이다. 나 말고도 배우라면 다들 편하다고 말할 거다. 준비는 어찌나 많이 하는지. 표를 잘 안 내서 그렇지. 대화하다 보면 얼마나 준비했기에 저런 이야기까지 하나 싶을 정도다. 언젠가 촬영 때 도대체 잠은 얼마나 자냐고 물어봤는데 2시간 잔다고 하더라. 다음날 어떻게 빼먹을지 궁리를 하니까 그러는 거지. 게다가 현장에서는 시연을 어찌나 잘하는지. 기가 막히다. 특히 실용적인 연기를 알아듣게 잘 일러준다. 그렇게 하는 것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 앵글에서는 원하는 감정이 잘 표현된다고 지적해주곤 하니까. 시험 당일날 아침 자습하고 있는데 핵심 체크 해주는 거랑 거의 맞먹는다.

-부산 출신인데 사투리를 거의 안 쓴다. 게다가 <타짜>에서는 전라도 사투리를 쓰잖나. =원래는 사투리를 많이 썼는데 서울 여자랑 결혼하니까 많이 고쳐지더라. 사투리 안 고쳐지는 사람들은 서울 사람을 가족 만들면 된다.

-연극은 부산 동의대 시절부터 시작한 건가. =1학년 때 극예술연구회에 들어가서 거기서 쭉 살았다. 독문학과인데 학과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대학 입학 때만 하더라도 막연하게 영화감독을 하고 싶었는데. 어찌하다 보니까 배우가 되어 있더라. (웃음)

-처음엔 연극연출도 했는데. =연출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한 거지. 개런티도 안 주는 연극연출을 누가 하려고 하겠나. 연출만 한 건 아니고 조명, 음향, 무대감독까지 다 하는 1인 다역 연출이었지. 그러다가 서울에 올라오게 됐다. 아마 1990년이었을 거다. 대학로에 연극에 미쳐 젊음을 불태우는 청년들이 있다는 말만 듣고 상경했다. 그때 만난 친구들이 (송)강호, (유)오성이, 김뢰하 등등이다. <한씨연대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최선생> <칠수와 만수> 등 연우무대의 연극들을 보고서 반해서 연우무대에 들어갔고, <국물 있사옵니다> 등 몇편을 했다. 지방과 달리 다 모여서 작업을 하니까 외롭지도 않고, 또 쉴새없이 작업이 올라가니까 그것도 좋고. 차 끊겨서 공중전화박스에서 졸면서도 신바람났었다. 연우무대에서 시작해서 산울림, 극단76 등에서도 활동했다. 낭인 생활을 한 거지. 여러 연출가와 여러 배우들을 만나 작업할 수 있었던 시기였는데, 그때 그 경험들이 도움이 된다. 특히 극단76의 기국서 선생 같은 파격적인 연출가를 만나서 자극받을 수 있어 좋았고.

-중간에 연기를 그만둔 적이 있는데. =‘왜 살면서 연기를 하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때도 그랬을 것이다. 연극하겠다고 뭘 저렇게까지 꾸역꾸역 주눅들어 살지. 뭘 더 배우겠다고 안달이 나서 저러지. 캐스팅이 안 돼서 괴롭고, 캐스팅이 되면 날뛰고, 왜 저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하나. 게다가 그때는 결정된 것보다 결정되지 않은 것이 더 많았던 때니까 그만하자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부산에 다시 내려가서 동호회하다 만난 지인 소개로 재즈라이브카페를 운영하면서 살았다. 미8군부대 출신 연주자 할아버지들과 함께.

-다시 시작한 계기가 있나. =그냥. 하고 싶더라. 강호도 전화해서 “와 빨리 안 올라오느냐”고 재촉하기도 하고. 그래서 2000년에 다시 올라와서 <재개발>이라는 번역극에 출연했다.

-영화와 연을 맺은 건 <베사메무쵸>가 처음인데. =학전에서 <의형제>를 할 때인데 영화인들이 꽤 많이 보러왔다. 최동훈 감독도 그렇고. <베사메무쵸>의 전윤수 감독은 <의형제>에 출연한 여배우랑 결혼할 사이여서 보러 왔다가 나랑 인연을 맺은 거고. <천하장사 마돈나> 같은 경우는 <범죄의 재구성> 때 조감독이기도 한 김승용이 대본을 보내줘서 봤다. 게다가 김무령 프로듀서가 <살인의 추억> 프로듀서라 강호랑 인연이 있을 테고. 강호가 내 칭찬을 좀 해줬겠지. (웃음)

-연극연출에 대한 미련은 없나. =게을러져서 이젠 못한다. 한다고 나서면 여럿 괴롭히는 일이 될 거다. 연출하려면 차곡차곡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전체를 다 책임져야 하는 감독보다는 배우가 더 낫지 않나. 연기랑 연출이랑 번갈아 해야 할 때도 다들 넌 연기라고 그랬다. 연기가 맞다고. 내가 연출하면 배우들의 마음을 알아서 그런지 배우들이 주눅들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좋다고는 하면서도.

-배우로서 연기에 대한 욕망이 있다면. =다들 나이 먹으면 그러지 않나. 연기를 빼고 싶다고. 연기를 더하고 싶지 않다고. 연기에 대한 욕망이 커질수록 연기는 빠지겠지.

-늙어서 뭐하고 살고 싶나. =돈 많이 벌어서 은행에 넣어놓고 야금야금 쓰면서 여행 다니려고 한다. 여행을 굉장히 좋아한다. 말띠라서 그런지 전에도 똥차 몰고 전국 투어 여러 번 했다. 낚시도 좋아하고. 가본 곳 중에선 보길도가 너무 좋았다. 검은 자갈 있는 해변 가봤나? 신기한 것 중 하나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라디오 한번 안 켜고 담배 몇대 피우면서 5시간 정도 운전하는 게 그렇게 좋다. 졸립지도 않고 서울에 탁 내리면 몸의 밸런스가 맞는 것 같다. 차분해지고. 과정을 즐기는 재미라고 할까. 꼭 어디 목적지에 가지 않더라도 그런 과정을 즐기길 좋아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도 그러지 않을까. 아직까지는 나란 배우를 대중이 완벽하게 아는 것은 아니니까. 나 또한 하나씩 하나씩 노점에 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중이니까.

-정말 궁금한 게 있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도 그랬는데 오늘도 보니 눈이 계속 젖어 있다. 원래 눈이 그렇게 촉촉한가. =요즘 와서 그런 소리 듣는다. 왜 그럴까.

-혹시 질환이 아닐까. =그런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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