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비디오 > 비디오 카페
진정한 수집가의 자세
2001-09-13

얼마 전, 한 다리 건너 아는 작가 중 한분이 <중국 무협영화>라는 책을 출간한다 하여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남들처럼 뷔페 차려놓고 하는 출판기념회가 아니라 국내에서 보기 힘든 중국 무협영화들을 상영하는 이벤트로 대신하는 행사였다. 장철 감독의 <외팔이> 시리즈 등 그 작가가 소장해온 비디오 중 희귀한 작품만을 엄선해 상영하는 독특한 행사였다.

사실, 나는 그 작가가 무협영화에 그렇게 내공이 있는지도 몰랐고, 그 역시 내가 비디오 대여업을 하는지 몰랐던 터라 서로에 대해 진지하게 탐색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공통의 관심사를 갖게 된 것을 서로가 아는 순간, ‘친하게 된 시기 3년은 먹고 들어가는 식’의 금세 친해지는 그런 원리처럼 서로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는 “어디서 해요?” 하면, 나는 “몇편이나 모으셨어요?”,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호금전 감독 것은 몇편이나…?”, 대답을 마치기도 전에 나는 “그러면 선생님은 몇편을…?, 장철 감독 것도 갖고 계시나요?” 하는 식으로 대화는 속사포처럼 이어졌다.

그와의 대화 속에서 나는 ‘진정한 가치를 알고 모으는 수집가’와 ‘장기적으로 보지 못하는 장사치에 불과한 나의 자세’라는 엄청난 차이를 깨달았다. 그는 홍콩과 대만을 드나들며 모은 것에서부터 동네에 폐업하는 대여점을 찾아다니는 자세였고, 나는 단지 더이상 보관할 곳이 없다는 이유로 몇 박스나 되는 분량을 그것도 환경미화원에게 돈까지 주면서 버려왔던 것이다. 그렇게 성의없이 버려진 ‘장께 비디오’들 중 지금은 소중한 자료가치로 남을 자산이 될 테이프가 있을 수도 있음을 생각할 때, 그 아쉬움은 며칠간이나 나의 마음을 쓰리게 하고 있다.

이주현/ 비디오카페 종로점